최고경영자의 원활한 승계는 기업가치 유지를 위해 가장 기본으로 갖춰야할 기반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엠(GM)과 메릴린치 등의 사례를 보면 모두 리더십 부재에 대응하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 갑작스런 공백에 대비하려면 후보자 발굴뿐 아니라 양성과 평가과정을 모두 마련할 필요가 있다.
THE CFO는 이사회의 '견제기능' 지표를 통해 최고경영자에 대한 승계정책을 살펴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이사회 평가를 위한 6개 지표 중 견제기능에서 최고점을 받았으며 특히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체계적으로 운영 중이다. 올해 노진율 사장도 이 과정을 거쳐 선임됐다.
◇'견제기능' 9개 문항 중 5개 최고점…승계정책 부각
THE CFO는 자체 평가 툴을 제작해 '2024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올 5월 발표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와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1분기 보고서 등이 기준이다. 6대 공통지표(△구성 △참여도 △견제기능△정보접근성 △평가 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로 HD현대중공업의 이사회 운영과 활동을 분석한 결과 255점 만점에 152점으로 산출됐다.
'견제기능' 항목은 이사회가 지배주주, 즉 오너를 견제하고 독립성을 갖춘 경영을 일궈나갈 수 있는 지를 판별하기 위한 평가 툴(Tool)이다. 사외이사 후보추천 과정과 내부거래, 감사위원회 구성을 포함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수체계 등을 살펴본다.
HD현대중공업은 견제기능 지표에서 45점 만점에 34점, 평점은 5점 만점에 3.8점을 받았다. 총 9개 문항 가운데 5개 항목에서 최고점수로 평가됐다. 감사위원회가 3인 이상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로 선임된 점, 등기이사 대비 미등기 이사의 보수가 30% 미만인 점, 내부거래위원회를 따로 설치하고 있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는 부분이 두드러진다. HD현대중공업은 최고경영자 심의위원회를 두고 주요계열사의 전무급 이상 경영진을 후보군으로 선정하고 있다. 이 후보군을 상대로 대표이사로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계열사간 전직, 업무 전환, 전략 교육 등의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심의위원회는 최고경영자의 임기가 만료되기 최소 2개월 전까지 위원회를 열어야 하며 최종 후보군을 상대로 중장기 경영전략 방향, 각 후보의 강점 등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이나 심층면접 등을 실시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역량 보유 수준을 평가해 최종 후계자를 선정한다.
또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회사내 주요 직책자에 대해 상시적으로 후보군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연초엔 신임 임원, 5월과 10월엔 모든 임원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관련 교육을 열었다. 임원 중 선발된 인원은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HD현대 리더 코스(HD Hyundai Leader Course Ⅴ)를 밟기도 했다.
올 초 대표이사로 선임된 노진율 사장 역시 규정된 절차에 따라 최고경영자 심의위원회 등 승계절차를 거쳤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최고경영자 승계정책을 공식적으로 시행하기 전부터 내부적으로 팀장, 임원급 등에 대해 직책 후보자를 두고 관리해왔다"고 설명했다.
◇협소한 사외이사 추천경로
다만 경영지표 중에서 사외이사 선임, 운영 등과 관련한 문항에서 점수가 깎였다. HD현대중공업은 외부 자문단 또는 주주들로부터 이사를 추천받지 않는다. 이사회 내부에 설치된 사외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만 받고 있다.
경영진이 참여하지 않고 사외이사들로만 꾸려진 회의도 충분치 않았다. 분기별로 외부감사인 등과 커뮤니케이션 회의를 하고 있으나 연 4회 뿐이라 관련 항목 평가가 2점에 그쳤다. 또 이사의 보수를 산정할 때 총주주수익률(TSR) 이나 주주가치 제고 성과를 반영하지 않는 점도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이밖에 감사위원회 구성에 관한 감점 요인이 있었다. 현재 HD현대중공업 감사위는 채준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박현정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동목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교수 등 3명의 사외이사로 채워져 있으며 채 교수가 위원장을 담당 중이다.
이 가운데 채 교수는 미국 MIT대 경영학 박사를 거쳐 금융위원회 공정자금관리위원회 매각심사소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회계ㆍ재무분야 전문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자격증을 가진 공인회계사는 없어 최고점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