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와 재무는 기업 이사진 핵심 역량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 활동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나날이 다양해지면서 회계와 재무 분야의 전문성 과 투명성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꾸준하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각 기업들은 회계·재무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조언을 구하는가 하면 감사위원으로도 선임해 감시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 기업 사외이사 면면을 관찰한 결과 회계·재무 전문가에는 전·현직 대학교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교수가 아닌 경우에는 회계법인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는 삼일회계법인을 비롯해 삼정회계법인, 안진회계법인 등 국내 톱티어 회계법인 관리자급 출신 혹은 전·현직 고문들이 주로 자리잡고 있었다.
◇ 사외이사 5명 중 1명 회계 전문가…회계사 중 삼일 출신 최다
지난해 상반기 말 기준 코스피 시총 상위 100개 기업 사외이사 448명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업들이 회계·재무 전문가로 지명해 채용한 사외이사는 모두 87명이었다. 대부분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현지 교수였지만 이 중 회계사 근무 이력이 있는 경우가 있었고, 교수가 아니더라도 회계사 활동 이력이 있거나 고문을 맡은 경우도 많았다.
HD현대그룹의 경우 삼일회계법인 출신 인사가 상대적으로 많아 눈길을 끌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삼일회계법인 세무자문그룹 대표를 역임한 박수환 전 대표와 같은 기간 삼일회계법인 딜비즈니스 대표로 일한 김홍기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두 전 대표는 현재 각각 HD현대일렉트릭과 HD한국조선해양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 전 대표와 김 전 대표는 각각 1955년생과 1956년생으로 연배가 서로 비슷한 데다 같은 기간 동일 회계법인 대표로 활동한 뒤 비슷한 시기 HD현대그룹 계열사 이사회에 진입하는 등 최근 커리어 경로가 상당부분 겹친다. 김 전 대표가 지난해 3월 HD한국조선해양에 기용됐고 그 이듬해 박 전 대표가 HD현대일렉트릭 측에 영입됐다.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HD현대 역시 삼일회계법인 출신을 이사회에 영입했다. HD현대가 지난해 3월 신규 선임한 장경준 사외이사는 박수환·김홍기 사외이사가 삼일회계법인 대표로 근무하고 있던 2014년 해당 회계법인 부회장으로 위촉된 인물. 박수환 전 대표와 비슷한 시기 홍익대에서 회계 분야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기아 이사회 일원인 신재용 서울대 교수와 엘엔에프 사외이사인 이균발 대경회계법인 대표, GS 이사진인 한덕철 신정회계법인 고문 등도 삼일회계법인 근무 이력을 갖고 있다. 한 고문의 경우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SK스퀘어와 다올투자증권에서 사외이사로 일하는 기은선 강원대 교수도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 삼정·안진 출신도 이사회 활동…현직 기업 임원 영입 사례도
삼정회계법인 출신들도 적지 않았다. SK바이오팜은 서지희 전 삼정회계법인 부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최정욱 전 삼정회계법인 부대표를 이사진으로 기용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경우 삼정회계법인 부회장과 고문 등 거쳐 현재 한양대 교수로 일하고 있는 이재식 전 금감원 국장을 이사회에 영입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의 경우 하나금융지주의 이재술 사외이사가 대표적이다. 1958년생인 이재술 이사는 서울대 석사와 단국대 박사를 취득한 인물로 안전회계법인 대표 등을 역임했다. 대한항공의 홍영표 사외이사는 과거 안진회계법인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으며 LS일렉트릭 송원자 사외이사는 상무급 파트너스로 근무한 바 있다.
이 밖에 다산회계법인과 삼도회계법인, 성현회계법인, 예일회계법인, 한길회계법인 등 다양한 회계법인 출신 인사들이 기업 이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대부분 회계법인 경영진을 역임하고 있거나 역임한 인물들로 회계·재무 전문성과 함께 기업 경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거나 대학에 적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현재 회계법인에 소속된 회계사의 경우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사외이사직을 동시에 맡기가 힘들지만, 과거 회계법인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전문성을 나타내기에 충분하다"며 "회계사 중에서도 경영 능력도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면 기업 이사회 영입 순위에서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설명했다.
현재 기업 CFO 등으로 일하고 있는 인물들을 기용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오스템임플란트 재경총괄본부장(CFO)를 맡고 있는 이재호 현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넷마블은 CJ E&M에서 경영지원실장을 맡고 있는 황득수 경영리더의 회계·재무 및 M&A업무 분야 전문성을 인정, 사외이사 자리를 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