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을 공개한다. 시장 감시를 통한 소유·지배구조 및 경영 관행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해관계자는 이를 토대로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자산, 자금거래 현황을 파악하고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내부거래는 경영전략 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을 띤다. 하지만 재원을 그룹 내부에만 축적시키고 시장 경쟁력 약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더벨은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현황과 양상을 짚고 세부 자금흐름을 따라가본다.
LX그룹이 2021년 5월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된 후 내부거래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별도기준 매출의 70%가 넘던 주요 계열사 LX세미콘의 내부거래 비율이 제로(0)로 바뀌었다. 주요 거래처인 LG디스플레이와 계열분리가 이뤄짐에 따라 더 이상 내부거래에 반영되지 않아서다.
LX홀딩스 산하에 신설된 LX MDI는 내부거래 비율이 100%에 이른다. 그룹 회장의 장남이 대표이사로 있으며 계열사에 경영정보서비스와 경영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다. LX하우시스와 LX판토스가 매출의 절반을 챙겨주고 있는 곳이다.
◇계열분리 후 3년간 공정위 감시대상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한 2023년 LX그룹의 주요 계열사 간 상품·용역거래 현황에 따르면 2022년에 이어 작년에도 LX세미콘의 내부거래액은 0원이다. 2021년만 해도 내부거래 규모가 1조3741억원으로 별도기준 매출의 72.4%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극적인 변화다.
여기에는 LX그룹과 LG그룹 간의 계열분리 이슈가 자리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구동칩 설계사업에 주력하는 LX세미콘의 최대 고객사는 LG디스플레이다. LX세미콘이 설계한 칩이 LG디스플레이의 패널 제품에 들어간다. 이렇게 제작된 디스플레이 패널이 LG전자나 애플 등 엔드유저에게 공급되는 구조다.
2021년 5월 LX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독립하면서 LX세미콘과 LG디스플레이 간 거래는 내부거래에서 제외됐다. 70%가 넘던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제로로 급락한 배경이다. 다만 계열분리가 됐다고 해서 내부거래 이슈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LX그룹이 12개 회사를 들고 계열 분리할 당시 공정위는 내부거래를 줄이고 외부로 일감을 개방하는 등 후속조치 이행 조건을 달았다. 친족분리 이후 3년(2025년)간 이 부분에 대해서 공정위의 감시를 받는다. LG그룹과의 거래를 줄이지 않으면 무늬만 계열분리가 되는 셈이다.
LX세미콘은 지난해 '주요고객 A'로 지칭되는 LG디스플레이로부터 발생한 매출이 1조657억원으로 2년 전(1조8988억원)보다 8000억원 이상 줄었다.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2.4%에서 56%로 낮아졌다.
◇구형모 대표의 LX MDI, 매출 전액이 내부거래
2023년 LX그룹의 주요 계열사 내부거래 현황에선 2022년에 등장하지 않은 기업도 나왔다. 2022년 12월 그룹에 편입된 LX MDI가 그 주인공이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LX홀딩스가 자본금 5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경영컨설팅 업체다.
이 계열사의 특이점이 두 가지가 있다. 우선은 매출의 100%가 내부거래다. 그룹 계열사들을 상대로 경영정보서비스, 경영컨설팅, 직업훈련기관 역할을 하면서 돈을 번다. 최대 매출처는 LX판토스와 LX하우시스다. 지난 한해 각각 25억원, 22억원의 매출이 여기서 나왔다. LX MDI의 별도기준 총매출이 85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두 회사에서 절반 이상을 챙겨주고 있다.
두 번째는 구형모·서동현 각자대표 체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구 대표는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이 때문에는 LX MDI는 설립될 때부터 그룹의 싱크탱크이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LX그룹은 자체적으로 전사 리스크를 관리할 조직이 없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조직을 신설했다는 전언이다.
LG그룹의 LG경영개발원과 비슷한 위치다. LG경영개발원은 LG그룹의 싱크탱크 역할과 미래 먹거리 발굴, 시장 데이터 수집·분석, 임직원 대상 교육 등을 수행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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