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을 공개한다. 시장 감시를 통한 소유·지배구조 및 경영 관행의 개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해관계자는 이를 토대로 기업집단 내 계열사 간 자산, 자금거래 현황을 파악하고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내부거래는 경영전략 상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을 띤다. 하지만 재원을 그룹 내부에만 축적시키고 시장 경쟁력 약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더벨은 대기업 집단의 내부거래 현황과 양상을 짚고 세부 자금흐름을 따라가본다.
삼성그룹 비금융 상장계열사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고 모두 삼성전자에서 상당액의 매출을 끌어온다. 국내 매출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E&A, 해외 매출 중에서 내부거래 의존도가 가장 큰 곳은 삼성SDS로 나타났다.
별도기준 총매출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삼성전자로 86%에 이른다. 삼성전자 미국법인(Samsung Electronics America) 등 해외 판매자회사가 한국본사(제조사)로부터 제품을 받아 전 세계에 유통하는 구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 유일하게 삼성전자향 매출 '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한 2023년 삼성 주요 상장사(비금융사) 계열회사간 상품·용역거래 현황(내부거래)을 보면 삼성물산과 삼성E&A, 삼성중공업 등 EPC(설계·조달·시공) 계열사의 국내 매출 가운데 내부거래 비중이 유독 높다. 삼성E&A가 국내 매출 4조2223억원 중에서 97.4%(4조1146억원)가 내부거래로 비중이 가장 높다.
삼성물산은 국내 매출 13조1175억원 중에서 내부거래가 54.6%(7조1644억원), 삼성중공업은 8808억원 가운데 58.4%(5148억원)가 국내 계열사 간 거래에서 나왔다. 이들 3사의 내부거래 최대 거래처는 삼성전자다. 삼성물산 매출 6조2943억원, 삼성E&A 매출 3조4430억원이 삼성전자에서 나왔다.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등 전자·IT 계열사들도 국내 내부거래 최대업체는 삼성전자다. 삼성SDS는 국내 매출 4조2423억원에서 80.2%(3조4010억원)이 내부거래인데 그 중 2조560억원이 삼성전자다. 삼성SDI가 국내 6898억원 중에서 4028억원이 삼성전자향 매출이며 삼성전기 역시 7867억원 가운데 7861억원이 삼성전자에서 나왔다.
이는 삼성 비금융 계열사들의 사업구조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전자제품 제조가 주력인 만큼 반도체 공장 등을 건립할 때 보안문제로 계열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삼성E&A의 삼성전자향 매출 비중이 높은 것은 현재 건설 중인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삼성E&A가 담당하고 있어서다. 삼성전기에서 만드는 반도체 기판과 초소형 정밀부품, 삼성SDI의 2차전지 주요 수급처 또한 삼성전자다.
유일하게 이 같은 공식에서 예외인 곳이 삼성바이오로직스다. 내부거래처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밖에 없다. 지난해 국내 계열사와의 거래로 발생한 매출 2645억원 전액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나왔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양산해주는 CDMO 사업구조로 인한 내부거래다.
◇내부거래 의존도 가장 낮은 곳은 '삼성중공업'
삼성은 국외 계열사를 통한 내부거래 규모가 국내 계열사 간 거래보다 많다. 해외 매출 비중이 국내 매출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국내 매출(8808억원)보다 해외 매출(7조264억원)이 압도적이며 삼성SDI도 국내 매출(1조189억원)보다 해외 매출(18조7802억원)이 10배 넘는다. 삼성전기 역시 해외 매출(5조4645억원)이 국내 매출(1조3484억원)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해외 계열사를 통한 내부거래 의존도가 가장 큰 곳은 삼성SDS다. 국내 내부거래 비중도 80.2%로 높은 편인데 해외 내부거래는 98.8%(9132억원)다. 해외 매출의 대부분이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최대 거래처는 삼성SDS 미국법인(Samsung SDS America)이다. 계열사 전산·IT 등을 담당하는 시스템통합(SI) 특성상 그룹 내 일감이 많은 게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원인이다.
다만 공정위 기준으로 삼성SDS의 내부거래 비중은 65.8%다. 국내 법인에만 관할권이 있는 공정위는 2011년부터 별도기준 총매출 대비 국내 계열사 간 거래액으로 내부거래 비율을 관리 감독했다. 그간 숨겨져 있던 해외 계열사 내부거래액이 공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별도기준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삼성전자다. 총매출 170조3741억원 가운데 86%(146조5979억원)가 국내·외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나왔다. 국내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비중은 14.9%(3조663억원)에 불과한 반면 해외 내부거래 비중은 95.8%(143조5316억원)에 이른다. 최대 거래처는 미국 판매법인 삼성일렉트로닉스 아메리카다.
이는 삼성전자 국내 공장에서 제조된 가전, 휴대폰, 반도체 등의 제품을 해외 판매자회사가 받아 글로벌 시장에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곳곳에 판매법인들을 두고 글로벌 유통망을 자체적으로 구축, 운영하는 구조로 인해 생긴 현상이다. 국내 내부거래에서 가장 큰 거래처가 삼성전자판매(거래액 1조9758억원)인 것도 같은 이유다.
반대로 총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가장 작은 곳은 삼성중공업으로 6.8%다. 국내 내부거래에 비해 해외 내부거래 비중이 0.3%로 가장 낮다.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보다 압도적으로 큰 데다 주요 고객사 중에 계열사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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