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의 핵심인 이사회.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의 대행자 역할을 맡은 등기이사들의 모임이자 기업의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구다. 이곳은 경영실적 향상과 기업 및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준법과 윤리를 준수하는 의무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이 제대로 된 구성을 갖췄는지, 이사를 투명하게 뽑는지, 운영은 제대로 하는지 등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사회 활동을 제3자 등에게 평가 받고 공개하며 투명성을 제고하는 기업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이에 THE CFO는 대형 법무법인과 지배구조 전문가들의 고견을 받아 독자적인 평가 툴을 만들고 국내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해 봤다.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으로 사업 기반이 약화됐던 카프로는 태화그룹과 오퍼스프라이빗에퀴티, NH투자증권 PE 본부가 결성한 컨소시엄을 새주인으로 맞이했다. 태화그룹 최연호 회장 장녀인 최연지 케일럼엠 대표를 포함해 컨소시엄 핵심 인력들이 이사회에 진입했다.
새 이사회는 신사업 준비에 한창이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비핵심자산 매각에 나서는 등 신사업 재원 마련에 힘쓰고 있다. 경쟁력이 낮은 카프로락탐 사업은 접고 수소, 황산 등을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효성-코오롱 간 경영권 분쟁으로 사업 기반 약화
THE CFO가 실시한 '2024 이사회 평가'에서 카프로는 255점 만점에 총 70점을 받는 데 그쳤다. 해당 평가는 2023년 사업보고서, 2024년 분기 보고서 등을 기준으로 진행됐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의 경우 카프로가 제출하지 않는 만큼 평가에 활용되지 않았다.
평가 항목은 총 6개로 △구성 △참여도 △견제기능 △정보접근성 △평가 개선 프로세스 △경영성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항목별로 5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카프로의 평균 점수는 1.4점이다.
한 차례 회생 절차를 밟은 만큼 대부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1969년 12월 30일 설립된 카프로는 나일론 원료인 카프로락탐과 유안 비료 제조를 주된 사업으로 영위한다. 1974년 첫 생산을 시작으로 당시 수입에만 의존하던 나일론 원료를 제조·공급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시장에 진출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초우량 화학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효성과 코오롱의 두 차례 이어진 경영권 분쟁으로 사업 기반이 약해졌다. 1대주주인 효성티앤씨와 2대주주인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974년 민영화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부터 경영에 참여했다.
주주 간 갈등이 빈번히 발생했다. 1996년경에는 두 주주의 지분율 싸움과 이에 대한 차명주식 논란으로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2004년에도 지분율 확대에 대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후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효성티앤씨는 연달아 지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효성티앤씨가 지분을 정리하며 최대주주가 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경영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이후 카프로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소시어스에 매각 자문을 맡기고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태화그룹 최원호 회장 장녀 최연지 케일럼엠 대표 이사회 진입
올 4월 태화그룹 계열사 티엠씨(TMC)와 재무적투자자(FI)인 오퍼스프라이빗에퀴티, NH투자증권 PE 본부(이하 오퍼스-NH PE)가 힘을 합친 컨소시엄이 카프로를 인수했다. 자연스럽게 이사회에도 변화가 생겼다.
SK 출신인 유익상 대표를 비롯해 4명의 사내이사와 두 명의 사외이사로 이사회를 꾸렸다. NH투자증권 PE본부에서는 정성일 기타비상무이사가, 오퍼스프라이빗에쿼티에서는 홍준화 비상무이사가 진입했다. 1985년생 최연지 케일럼엠 대표도 사내이사로 들어왔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 경력 등을 지닌 이사들을 선임했다. 이에 2024 이사회 평가 '구성' 평가 항목 가운데 '다양한 국적, 성별, 연령, 경력을 지닌 이사들이 골고루 분포돼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4점이라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의 우선 과제는 카프로 실적 회복에 있다. 카프로는 2024 이사회 평가 '경영성과' 부문 11개 항목에서 모두 최저점인 1점을 받는 데 그쳤다. 카프로가 워크아웃까지 간 이력이 있는 만큼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운 상태였다.
새 이사회는 카프로의 핵심이었던 카프로락탐 사업 철수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에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된 부동산 자산 매각에 나섰다. 지난 10월 열린 이사회에서 울산공장 내 AS창고와 주변 부지 매각에 관한 안건을 참석자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AS창고는 물자를 정확하게 운반, 저장, 인도할 수 있는 자동화 창고를 뜻한다. 매각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신사업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힘쓸 계획이다. 카프로락탐 생산 과정에서 파생된 수소와 황산 정제 기술을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만큼 관련 시설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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