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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풍향계

자사주 '10조' 매입하는 삼성전자, 현금 보유량은

연결기준 100조, 본사 기준 16조로 예년보다 축소…해외법인서 수혈 유력

고진영 기자  2024-11-19 08:16:27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4만 전자'를 겨우 벗어나 가슴을 쓸어내린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에 거금을 풀기로 했다. 1년간 10조원어치를 산다고 하니, 아무리 삼성전자라지만 쉽게볼 수 없는 금액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자회사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자금을 당겨쓸만큼 현금흐름이 빡빡한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50조원 넘는 돈을 차입과 배당으로 끌어왔는데 10조원 지출을 감당하려면 또 다른 수혈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 9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연결 현금성자산은 103조7500억원이다. 100조8000억원 수준이었던 1년 전보다 소폭 늘었다. 10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충당하기 일견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본사 사정만 따지면 그리 여유롭지 않다.

삼성전자는 100조원을 넘는 현금이 대부분 종속회사에 몰려 있는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반기 말 종속기업은 226개에 달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가장 크고 나머지는 대다수 해외법인들이다. 규모대로 미국법인(SEA), 삼성아시아(SAPL), 미국 오스틴 사업장(SAS), 하만(Harman)순이다.

종속회사들 몫을 빼고 본사의 현금성자산만 따지면 3분기 말 기준 16조6462억원에 그쳤다. 11조원 남짓한 단기금융자산을 합산한 수치다. 상반기 말 보유현금이 11조6377억원던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폭 늘어나긴 했으나 평년 수준엔 한참 못 미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현금 부족에 직면하면서 자회사들에게 이례적으로 손을 벌렸다. 삼성디스플레이를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21조9000억원을 차입했고 이마저 모자라 해외법인 등으로부터 29조원을 배당 받아왔다. 2023년 상반기 말 삼성아시아의 자산규모가 전분기보다 11조원가량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당수입의 주요 원천은 여기로 짐작된다.

그 전까지 삼성전자는 종속회사에 자금을 밀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배당금수입도 대체로 연간 1조원 안팎에 그쳤으며 2019년(4조6251억원), 2021년(6조5600억원), 2022년 (3조5514억원) 정도가 그나마 많았다. 그런데 사상 초유의 차입과 배당 수혈을 감행하기까지 내몰린 이유가 뭘까.


애초 삼성전자는 2013년 이후 30조원 안팎의 현금을 본사에 일정하게 유지해왔다. 추세가 달라진 것은 특별배당으로 21조원을 풀었던 2021년(지급일 기준)부터다. 이 여파로 같은 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전년 대비 13조원 넘게 증가한 반면 배당과 CAPEX(설비투자) 지출이 급증하면서 현금성자산이 18조원대로 대폭 깎였다.

금고가 눈에 띄게 가벼워졌지만 당시 반도체 시장이 슈퍼사이클을 누리고 있었고, 삼성전자도 호황에 올라타 최대 매출을 경신하던 시기인 만큼 금세 채워넣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듬해 반도체 시장이 예상치 못한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데 있다. 현금창출력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운전자본과 CAPEX 부담이 이어졌다. 2022년 재고자산 증가분이 14조원 이상을 기록, 역대 최고 규모를 찍은 탓이다. 결국 보유현금을 다시 불리기는 커녕 4조원 밑까지 떨어졌다. 또 지난해는 현금이 6조1115억원으로 다시 증가했는데 캐시플로는 오히려 나빠진 모습을 보였다. 보유현금이 늘어난 것은 자회사들로부터 돈을 끌어온 덕이다.

올해의 경우 재차 현금이 쌓이고 있고 영업현금 역시 28조원에서 41조원으로 급증했지만 상황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 9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별도 누적 순이익은 전년 동기 24조1600억원에서 22조5300억원으로 되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업현금이 늘어난 데엔 조정 과정에서 감가상각비가 22조원 더해졌을 뿐 아니라 운전자본을 통제한 영향이 컸다. 감가상각비는 이익을 감소시키지만 실제 지출은 없으므로 현금흐름에 가산한다. 여기에 9조4000억원의 배당을 올해도 추가로 받았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매년 10조원 규모를 배당으로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또 해외법인에 신세를 져야할 수도 있다. 유력한 재원은 어딜까. 현재 계열사별 순이익 규모를 보면 삼성아시아가 3분기 누적 4조9508억원을 기록해 가장 벌이가 좋다. 다음으론 삼성디스플레이(4조8105억원), 삼성전자 베트남 타이응웬(SEVT, 2조105억원), 삼성전자 베트남(SEV, 1조3070억원) 등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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