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명세서에 찍힌 숫자. 내가 수행한 업무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 일한 대가의 많고 적음을 구분지을 수 있는 건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급여와 상여를 책정하는 근거가 충분한 합리성을 지니는지, 신뢰할 만한 지표를 토대로 산정했는지 살필 수 있다.
하지만 재계를 살피면 임원들을 둘러싼 보상기준이 베일 속에 가려진 경우가 많다. 경영 의사결정의 핵심 주체라지만 수행한 업무의 적정 가치가 반영된 산물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총수' 사내이사가 전문경영인보다 두둑한 보상을 얻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올해 LS일렉트릭 구자균 회장의 보수로 결정된 금액은 58억원이다. 사내 2위 김종우 글로벌 사내독립기업(CIC) 최고운영책임자(COO)에게 책정된 8억원과 비교해 7배 넘게 많다. 연봉 가운데 상여가 44억원이다. 영업이익 2784억원 달성,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신성장 사업역량 확보를 근거로 내세우지만 다른 임원 인센티브를 서술한 내용과 판박이다.
상법상 책임을 부담할 필요가 없는 미등기임원이 이사회 구성원보다 더 많은 보상액을 수령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띈다. 중견 건설사 IS동서 '오너' 권혁운 회장은 2018년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이후 지금까지 누적으로 100억원 가까운 보수를 받았다. 장남 권민석 의장이 사내이사인데 지난 3년간 연봉이 10억원에 그친 반면 미등기 상태를 유지하는 권 회장의 연봉은 12억에서 18억원으로 50% 올랐다.
미등기임원과 사내이사 간의 연봉 격차가 벌어지니 내심 이유가 궁금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니 급여 산정을 놓고 "임원 급여 테이블을 기초로 직급, 근속기간, 리더십, 전문성, 회사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쓰여 있다. 여타 상장사 공시에서 많이 접하던 문구다. 인센티브를 책정한 기준은 드러나지 않는다. 사측에 물어보니 "공시된 내용 이외에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온다.
국내 기업들이 보상기준을 형식적으로 서술하는 실태는 계량 지표와 가중치를 함께 기재하는 글로벌 기업의 트렌드와 상반된다. 백색가전의 대명사 월풀은 잉여현금흐름(FCF), 주당순이익(EPS) 등 정량 지표와 가중치를 열거하면서 임원 보수 책정을 둘러싼 투자자 신뢰를 얻었다.
임원은 막중한 자리다. 숙고를 거쳐 내리는 의사결정이 기업을 넘어 주주, 협력사로 파급되기 때문이다. 임원의 책임과 업무 중요성을 감안하면 보수 산정 근거를 한층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투명하게 드러낼수록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와 지지는 더욱 굳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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