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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맞물려 많은 상장사들은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벨은 주요 상장사들의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해보고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적인 밸류업이 가능할지 점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관련 테크기업 밸류업의 가장 정석적인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챗GPT로 대변되는 초거대 인공지능(AI) 트렌드에 힘입어 장래성을 보여줬다. 아울러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직접 시장 소통에 적극 나선 데다 배당과 자사주를 적절히 융합한 주주환원 정책을 펼쳤다. 트렌드, 장래성, 주주환원 3박자가 고루 맞아 큰 폭의 기업가치 제고를 이뤄냈다.
한미반도체는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나 마이크로 쏘(Micro Saw) 등 반도체 후공정 장비를 제조하는 업체다. TC 본더는 가공된 웨이퍼(반도체 원판) 위에 개별 칩을 정밀하게 쌓는 반도체 패키징 작업에 필수장비이며 마이크로 쏘는 패키징이 끝난 반도체를 정밀하게 자르는 장비다.
국내에 여럿이 있는 반도체 관련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중 하나지만 수년간 기업가치가 급격하게 뛰어오르면서 주목받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2.68배로 1~2배 수준인 동일업종 상장사(피어그룹)를 크게 웃돈다.
지난해 3월 1만8000원 수준이었던 주가는 현재 13만원을 훌쩍 넘는다. 총주주수익률(TSR) 역시 2020년 132.4%, 2021년 110.68%를 기록했으며 2022년에는 마이너스(-)38.66%로 하락했으나 작년에는 449.7%란 기염을 토했다.
한미반도체의 이 같은 기업가치 제고에는 AI 트렌드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초거대 생성형 AI인 챗GPT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 그래픽처리장치(GPU)다. 이를 가동하기 위해선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가 필수다. 이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TC본더란 장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한미반도체는 TC본더 장비 제조에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
덕분에 미국 마이크론, 국내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 기업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2월에 SK하이닉스로부터 860억원 규모의 HBM 제조용 장비 공급계약을, 3월에는 214억원 규모의 계약을 연달아 맺었다. 작년 매출의 67.5%에 이르는 규모다.
한미반도체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590억원, 345억원으로 전년(3275억원, 1118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 회복과 HBM 수요 견조에 대한 기대감이 투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와 더불어 CFO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시장 소통에 적극적이다. 2020년 3분기 중 CFO로 영입된 김정영 부사장은 경제 유튜브 방송 등에 나오면서 어려운 반도체 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등 투자자와의 소통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증권가와 자본시장 출신인 만큼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을 설명하는데 익숙한 덕분이다. 실제로 다양한 국내외 증권사에서 근무하며 기관투자가를 응대한 터라 폭 넓은 자산운용사 인맥을 가진 인사다.
화룡점정은 주주환원 정책이다. 연평균 20% 이상의 배당성향을 유지하면서 자사주도 꾸준히 취득해 소각했다. 2021년에 자사주 204만1624주를 소각했으며 2022년에는 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신탁을 체결하고 200억원(157만452주)어치를 소각했다. 올해도 1월에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신탁 계약을 체결했으며 200억원(34만5668주)을 4월 중에 소각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