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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맞물려 많은 상장사들은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벨은 주요 상장사들의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해보고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적인 밸류업이 가능할지 점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삼성생명이 자사주 소각 카드를 꺼냈다. 상장 보험사 중에 만년 저PBR주로 꼽히는 삼성생명은 지난 5년간 공모가(11만원)를 한창 밑돌고 있었다.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에 따른 자본확충 이슈와 배당 외에는 별다른 주주환원 정책이 없는 탓이다. 아울러 업권 특성상 성장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삼성생명은 2010년 5월 기업공개(IPO) 당시 공모금액 4조8881억원으로 역대급 기록을 세운 곳이다. 2022년 1월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12조7000억원)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전무후무한 초대형 IPO였다. 당시 공모가는 11만원, 문제는 그 이후 삼성생명의 주가가 공모가를 넘은 적이 손을 꼽을 듯하다는 데 있다. 지난 5년간에는 공모가를 넘어선 적이 한번도 없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0.4배로 시장에서 낮게 평가되고 있다. 자산규모와 매출 등으로는 보험업계 1위이며 315조원에 이르는 총자산은 시중은행 다음 가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이주경 삼성생명 경영지원실장(CFO) 부사장은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이 지난 수년 동안 낮은 수준에서 정체됐으며 이 때문에 주주환원도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자본효율성을 나타내는 ROE의 경우 삼성생명은 점진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2020년 3.53%였던 ROE는 2022년에 5.73%를 찍고 작년 말에는 5.86%로 유추되고 있다. 다만 이는 8~9%에 이르는 은행지주사나 증권사 등 타 금융권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삼성생명의 저평가는 여러 원인이 중첩된 결과다. IFRS17과 새로운 자본규제(K-ICS) 도입이 수년째 지속되면서 보험업계에는 자본확충 이슈가 오랫동안 과제였다. 삼성생명 역시 K-ICS가 어떻게 도입될지 불투명한 만큼 통 큰 주주환원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전반적인 수익성이나 성장성도 떨어졌다. 총자산순이익률(ROA)가 1%도 안 될 정도인데다 저출산 고령화로 보험가입 잠재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또 국내 시장은 이미 1인당 생명보험을 한두 개 이상 가입한 경우가 많아 새로 가입할 유인이 적다. 해외시장에서 전혀 빛을 보지 못하는 내수형 산업이란 점도 발목을 잡았다.
다만 이 부사장은 "삼성생명은 지난해 IFRS17 제도 하에서 손익개선에 성공했으며 보험계약마진(CSM)도 순증함에 따라 자산운용수익 개선을 통해 ROE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며 "밸류업 프로그램의 내용이 확정되면 주주환원 관점에서 신중히 검토한 뒤 시장과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2023년 말 기준 K-ICS비율은 215~220%로 추산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권고 기준인 150%를 웃도는 수준이다. 삼성생명은 중장기 K-ICS비율 목표를 200~220%로 잡고 있으며 최악의 가정(워스트 시나리오)으로는 180%로 설정했다. 즉 나머지 잉여자본은 주주활용에 활용할 수 있다.
삼성생명 측은 잉여자본의 주주환원 활용과 관련해서 밸류업 프로그램과 연계해 검토한 뒤 시장과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총주주환원율(TRS) 관점에서 추가 자사주 매입이나 보유 자사주의 소각 역시 고려하는 중이다. 그간 삼성생명의 주주환원은 배당 중심이고 자사주 정책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