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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맞물려 많은 상장사들은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벨은 주요 상장사들의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해보고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적인 밸류업이 가능할지 점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2차전지 부품 업체 '상신이디피'가 자사주 소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2021년 중순 이후 약 3년 만이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전기차 생산이 둔화됨에 따라 성장 속도에도 제동이 걸리며 밸류에이션(시가총액)이 하향세를 그렸는데 이를 타개코자 새로운 자본 정책을 결정했다. 해당 이슈와 맞물려 올초부터 밸류에이션이 반등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상신이디피는 이날(18일) 기준 최근 3개월간 약 1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 1월 주당 1만4000원대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이달 2만원에 근접했다. 이 기간 시가총액 변화는 1980억원에서 2580억원으로 약 600억원 늘었다.
1년 전 주당 3만원에 달했던 주가가 당해 말까지 계속해서 하락세를 나타냈던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코스닥 시장 전체 수익률과 비교해도 상신이디피 수익률이 이달 기준 약 24% 더 높다.
상신이디피 관계자는 "이전엔 거래량 규모만 따지면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는데 최근 주식 소각 결정 후 거래량이 크게 개선되는 등 투자자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경영진 단의 공감대가 있었고 이에 따라 주식 기취득분 소각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자사주 소각은 주주 정책 변화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지난 2021년 7월 1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상신이디피는 이후 별도의 소각 활동을 더 전개하진 않았다. 2007년 코스닥 상장 후 14년 만에 단 한 차례의 주식 소각에 그친 그림이다. 이마저도 당시 일부는 장내에서 매도하며 자금을 회수하려 시도했다. 당시 회수 금액만 따지면 자사주 소각분 대비 2배 더 많은 21억원 규모였다.
상신이디피는 올해 주식 소각 규모를 과거 대비 크게 늘렸다. 이날(18일) 총 30억2560만원 규모의 기취득 자사주를 소각한다는 계획이다. 보통주 20만주를 소각하는 계약으로 이달 기준 자사주 보유분의 3분의 2 규모다. 시장에서의 자사주 처분 같은 별도 자금 회수 시도는 병행되지 않는다.
앞서 올해 자사주 취득 발표 당시만 해도 상신이디피는 취득분과 관련한 구체적인 후속 처분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당월 말 금융 당국이 증권 업계와의 간담회 개최 후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공식 주문하면서 취득분을 최종 소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상신이디피는 지난 1월 총 24억4000만원 규모의 자사주를 3개월에 걸쳐 취득할 계획이라 밝혔다.
다만 소각 규모로만 따지면 이익분 대비 유의미한 수치는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상신이디피 별도 자본총계는 1068억원이다. 직전년도 기준 반영된 자본준비금과 이익준비금을 단순 대입, 현재 최종 주주 환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배당 가능 이익은 578억원 수준이다. 이에 비춰볼 때 최근 결정한 주식 소각 금액은 전체 배당 가능 이익의 5% 남짓이다. 규모 면에서 볼 땐 사실상 이익 대비 큰 몫을 주주 환원 재원으로 배정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상신이디피는 제조 업종의 불확실성을 감안, 보수적인 재무 전략을 견지할 필요성이 컸다고 설명했다. 대외 환경 변화에 따라 영업 전개, 이익 확보 등 경영 전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다 보니 재무 안정성을 고려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주주 환원율을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배당액을 가시적으로 늘리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라는 설명이다. 올해 상신이디피 주당 배당액은 전년대비 4% 늘어난 120원에 그쳤다. 지난해 배당액 증가율(15%) 대비 10%포인트 가량 내렸다.
상신이디피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설비 투자 등을 고려했을 때 자본 여력을 어느 정도 확충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며 "필요할 때마다 매번 자금 조달을 할 수 없고 또 제조 업황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보니 발생 이슈들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히 잉여금을 쌓아두도록 한 것"이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