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조중훈 한진그룹 선대 회장은 1945년 11월 경기도 인천부에 한진그룹 최초의 회사인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트럭 1대를 갖고 인천항을 중심으로 사업 초기 수송업을 하면서 1947년 10월 경기도 지역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했다.
한진상사는 1956년 11월 주한 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체결하고 1958년 6월엔 주한 미군 포장이사화물 수송사업을 개시했다. 1961년엔 민간항공사 '한국항공(Air Korea)'을 설립하고 비행기 대절사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한진관광 주식회사를 세워 고속버스 사업을 개시했다.
수송업 범위를 넓혀가던 한진상사는 1969년 3월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대한항공으로 상호를 바꿨다. 1981년 미국 LA공항에 대한항공 전용 화물터미널을 세웠으며 1983년 보잉 747 모의 비행훈련 장치를 도입하면서 1984년 경기도 부천시에 엔진 시운전실을 열었다. 이 때 영문명칭도 기존 'KOREAN AIR LINES'에서 'KOREAN AIR'로 바꿨다.
1985년 제주국제공항에 국내선 전용 화물청사를 열고 1987년 김해공장 종합자재창고와 캐터링센터를 설립했다. 1989년엔 기초비행훈련원을 열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가입했다. 같은 해 11월 정보통신산업 육성을 위해 한진정보통신을, 1991년 9월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교육연구소를 설립하고 1992년 6월엔 국내 최초 택배사업까지 개시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 최초로 보잉 747-400 기종을 도입한 항공사다. 1988년 10대 주문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대한항공의 메인 기종으로 활용해왔다. 이 시기 유럽 항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시베리아 항로가 개척됐다. 1990년 모스크바에 취항한 데 이어 소련 해체 후 1994년 블라디보스토크, 200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취항했다.
대한항공의 유럽 노선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미주 노선 다음으로 규모가 커졌다. 이밖에 대양주 노선도 신규 취항했고 일본 노선도 확충됐다. 그룹 항공부문에서 2세 경영이 차차 진행돼 갔다. 사업 항로가 넓혀지면서 1993년 조양호 수석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1999년 조중훈 회장이 물러나고 조양호 사장이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조중훈 회장은 본격적인 2세 경영을 위해 1990년대 들어 장남 조양호에게 항공, 차남 조남호에게는 중공업을, 삼남 조수호에게 해운업을, 막내 조정호에게 금융업을 맡겼다. 2002년 조중훈 회장 사후 장남 조양호가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으나 유산상속을 둘러싸고 법적분쟁이 시작됐다.
조중훈 회장 사후 차남 조남호와 막내 조정호 측은 유언장이 조작됐다는 논란을 제기했다. 2002년 11월 조중훈 회장이 작고하기 직전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조양호 회장 측 관계자들만 배석한 가운데 유언장이 조작됐다는 뜻이다.
유언장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다. 다만 아들 4명이 주요 계열사를 각각 나눠가지라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계열 분리를 통해 장남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을 포함해 그룹 지주회사나 다름없던 정석기업, 한진, 한국공항 등 주요 계열사를 차지했다는 주장이다.
2005년 차남 조남호는 막내 조정호와 함께 숙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외숙부 김성배 한진관광 고문의 정석기업 주식이 조중훈 전 회장의 차명주식이라며 분배해줄 것을 조양호 측에 요구했다. 증여소송 결과 조양호가 패소하면서 조중건 전 부회장과 김성배 고문의 주식 약 6만9000주를 각각 3만4528주씩 분배받았다.
2008년 초 차남 조남호와 막내 조정호는 장남 조양호와 정석기업을 상대로 부암장 지분을 분할하고 정신적 피해보상을 위해 각 1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부암장을 기념관으로 조성하기로 해놓고 조양호가 5년 넘게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사유재산화 한다며 동생들이 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당시 원고 측이 돌려달라는 부암장 지분은 6.5분의 2였다. 창업주 아들 4명과 딸 1명의 지분(각 1)과 모친 지분(1.5) 중 조남호, 조정호 지분을 돌려받아 그곳에 기념관을 독자적으로 짓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2011년 법원의 비공개 화해 권고안에 따라 해당 소송은 마무리됐다.
2009년 초 대한항공은 차남 조남호 소유의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제주 서귀포시 칼(KAL)호텔 인근 토지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한항공은 소장을 통해 "1995년 한진중공업으로부터 호텔 용지를 매입하면서 업무용 토지 7필지에 대해서만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고 비업무용 토지 11필지는 중과세 때문에 이전 등기 없이 별도로 합의서만 작성했다"며 "하지만 한진중공업이 계약을 어기고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한진중공업이 비업무용 토지 주위에 철조망 설치와 변전실 철거를 통보하는 등 사실상 호텔 영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요구를 하고 있어 소송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토지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음에도 대한항공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대한항공은 또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본사 빌딩 앞 토지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한진중공업에 토지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1998년도에 한진중공업에 건물만 매각했다. 토지에 대해선 2년마다 한 번씩 임대차 계약을 맺기로 했다"면서 "최근 계약이 만료 돼, 지난해 7월 토지 반환을 통보했으나 한진중공업이 거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공항 순환버스 및 본사 주차 공간이 필요하게 돼 땅이 필요하게 됐다"면서 "땅 주인으로서 비워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형제의 난'을 겪은 조양호 회장은 2019년 4월 8일 임종 직전 "3남매간 함께 잘 해 나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같은 해 4월 24일 한진칼은 이사회를 열고 둘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하는 등 초반엔 경영권 정리가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싸고 이들의 내전은 시작됐다.
2019년 12월 23일 맏딸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대리인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회장이 공동경영 협의에 무성의하다며 공개 비판했다. 입장자료에서 조현아는 "조원태 대표가 조양호 회장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했으며 현재도 가족 간 협의에 무성의하고 지연하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한진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온 KCGI(일명 강성부 펀드) 측과의 연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틀 뒤인 성탄절, 조원태는 모친인 이명희 고문과 언쟁을 벌이며 소동을 일으켰고 이는 언론에 보도됐다. 같은 달 30일 조원태와 이명희는 공동 사과문을 통해 부정적으로 돌아서는 여론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회사 경영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3자 주주연합 측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같은 달 13일 3자 주주연합은 주주제안을 통해 한진칼 이사진 후배 8인을 추천했다. 이 중 사내이사 후보인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는 후보에서 18일 사퇴했다. 20일 강성부 KCGI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그룹에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공격이 들어왔다. 3월 4일 채이배 의원은 국회 법사위에서 대한항공 에어버스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다음날 3자 주주연합 소속인 반도건설도 한진칼 보유지분에 대해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허용해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12일 3자 주주연합 측은 대한항공 자가보험, 신우회 등 의결권에 대한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하지만 같은 달 24일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이후 상황들도 조원태 회장 측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3월 26일 국민연금은 조원태 사내이사 선임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이어 27일 한진칼 주총에서 조원태 사내이사 연임안이 통과됐다. 주요 주주들 가운데 가족과 델타항공의 지지를 얻어낸 데다 노조도 조현아를 비난하며 사실상 조원태 지지 세력으로 부상했다.
결국 3월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출석 주주 중 찬성 56.67%, 반대 43.27%, 기권이 0.06%였다. 조 회장 측이 사내이사로 추천한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 사외이사로 추천한 김석동, 박영석, 임춘수, 최윤희, 이동명 후보도 전부 신규 선임됐다. 반대로 3자 주주연합이 사내이사로 추천한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과 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 사외이사로 추천한 서윤석, 여은정, 이형석, 구본주 등 선임안은 부결됐다.
2020년 4월 1일 조현아를 주축으로 한 3자 주주연합의 지분(42.75%)이 조원태 회장 연합의 지분(41.3%)을 앞지르면서 2차전이 시작됐다. 3자연합은 이 지분율을 기반으로 2021년 3월에 돌아올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교체를 추진해 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면서 다시 불타는듯 했던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은 사그라들었다. 2020년 11월 17일 산은은 한진칼과 투자합의서를 체결하고 12월 초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66%를 확보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서였다.
정부의 긴급지원 발표 직후 조 회장은 "소모적인 지분경쟁을 중단하겠다"며 임시 휴전을 선언했다. 대한항공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항공업 회생에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한 만큼 3자연합도 한동안 시장 분위기를 살폈다. 하지만 살 길을 찾아야 했기에 11월 20일 한진칼에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이 주주명부에 오르기 전 임시주총을 하루 빨리 열고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안건으로는 신규 이사의 선임과 정관 변경건을 올렸다. 같은 달 KCGI 측은 한진칼 신주발행 가처분 금지 소송도 제기했다. 하지만 3자연합 측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임시주총 소집은 거부당했고 12월1일 법원은 산은의 한진칼 지분 확보를 허용했다.
조 회장 우호 지분이 42%를 넘어서면서 3자 주주연합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산업은행이 지분 10.66%를 인수하며 동력을 잃었다. 2021년 3월 조 전 부사장은 KCGI에 주식 5만5000주를 매각해 현금화했다.
힘이 빠진 3자연합은 2021년 3월 26일 열린 한진칼 주총에 대한 주주제안을 포기했다. 이때 주총에서 3대주주이자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이사회 성별 구성 다양화, ESG경영위원회 및 보상위원회 설치 등을 제안했고 해당 안건들은 모두 통과했다. 같은 해 4월엔 3자 주주연합이 공식 해산을 발표했다. KCGI와 반도그룹은 산은과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용으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