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국내 대형항공사 1위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마일리지를 활용해왔다. 가장 먼저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고 제휴카드도 확대하면서 마일리지는 대한항공의 시장점유 지키기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회계기준이 변경되면서 부채비율 부담이 가중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대한항공은 서둘러 마일리지 사용처를 늘리고 유효기한도 만드는 등 마일리지 없애는 데 집중해왔다. 그나마 기존엔 유효기한이 따로 없던 마일리지가 올 6월 말부터 소멸되기 시작하면서 올해를 기점으로 대한항공의 부담이 연간 많게는 수백억원씩 덜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도입 초중반기 부채총계 대비 마일리지 충당부채 비중 1.8% 불과대한항공은 1984년 상용고객우대제도(FTBS)라는 이름으로 마일리지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마일리지는 충당부채로 인식됐다. 고객이 모은 마일리지로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발생 예상되는 원가 기준으로 '충당부채'를 설정하는 방식이었다.
항공업 특성상 원가는 항공기체와 항공유, 승무원 임금 등으로 구성된다. 항공기를 하나 띄울 때 들어가는 고정비에 비해 마일리지 사용 승객 한 명을 추가로 탑승시킬 때 들어가는 추가비용은 크지 않다. 이때 마일리지로 인해 계상되는 충당부채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여기에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경쟁사로 등장하면서 대한항공은 마일리지를 시장점유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은 양대 항공사가 제휴카드를 활용한 고객유치 경쟁을 시작한 때였다.
먼저 아시아나항공이 1994년 12월 위너스카드(현 삼성카드)와 제휴해 사용실적 1000원당 1마일리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대한항공은 1995년 마일리지 회원 제도 명칭을 '스카이패스'로 변경하고 LG카드(현 신한카드)와 국민, 외환, BC카드 등 다양한 카드사와 제휴를 개시했다.
당시 일반 카드사만 제휴하던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대한항공은 통신사 KT 등 제휴카드 카테고리를 확대해 고객층을 넓혔다. 여기에 프리미엄 회원 등급인 '모닝캄'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제휴사를 통한 적립 마일리지도 등급 산정에 포함하는 등 마일리지를 쌓는 유인동기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당시 마일리지 충당부채가 회사에 끼치는 재무적 부담은 크지 않았다. 마일리지 충당부채가 가장 많이 쌓인 시기인 2009년만 봐도 2799억원으로 당시 부채총계(15조2527억원)의 1.8%에 불과했다.
◇국제회계기준 적용에 '수조원대' 이연수익 부담, 부채총계 13.7% 차지덮어놓고 규모를 키워오던 대한항공 마일리지는 2010년을 기점으로 재무 부담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시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마일리지를 충당부채가 아닌 이연수익으로 새로 인식했다. 이때 기존엔 원가 기준으로 설정하던 부채가 공정가치 기준으로 바뀌면서 회계상 인식하는 부채 규모가 급격히 늘었다.
2009년 2799억원이던 마일리지 충당부채는 2010년 이연수익으로 계정이 바뀌면서 1조원을 넘겼다. 공정가치 기준의 경우 아닌 판매가(시장 가격)를 기반으로 계상되면서 원가 기준보다 숫자가 커진다. 이에 2022년 말 기준 이연수익은 2조7026억원을 기록해 부채총계(19조7052억원)의 13.7%에 달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상승했다. 2009년 429.8%였던 부채비율은 2010년 510.6%, 2011년 708.5% 등으로 올라갔다. 경영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가운데 재무건전성을 관리할 의무가 있는 CFO로선 마일리지 정도의 숫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IFRS 도입 이전 규모의 열 배에 달하는 마일리지 부채 부담을 털어내기 위해 대한항공은 선제적으로 제도 변경에 나섰다. 가장 먼저 도입한 제도는 마일리지 유효기간이다. 2007년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최초로 5년짜리 유효기간을 도입했다. 2010년에는 2008년 7월 이후 적립한 마일리지에 한해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연장했다.
코로나19 전후로 마일리지 사용처도 대폭 확대했다. 기내 판매용 로고 상품뿐 아니라 수족관, 테마파크, 렌터카, 민속촌 등 국내 사용처를 다양하게 늘렸다. 코로나19 여파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마일리지 사용은 급감했으나 제휴카드 등을 통한 적립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마일리지 항공권을 대신할 용처를 발굴한 것이다.
재무적 부담이 확대되자 지난해 하반기 대한항공은 마일리지 공제율을 올리는 개편안까지 준비했으나 정부 당국과 정치권, 여론 등 반대에 부딪혀 전면 재검토하기로 선회했다. 그나마 유효기간 10년짜리 마일리지의 첫 소멸 시한이 올해 6월 말로 다가오면서 하반기 마일리지 관련 이연수익은 소폭이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한항공은 하반기 중 소멸될 마일리지 규모를 대외비로 두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시 기반으로 추정하면 마일리지 충당부채는 2008년 6월 말 2157억원에서 2008년 12월 말 2353억원으로 196억원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