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으로 283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에는 영업손실로 314억원을 기록했다. 화물 사업 호황으로 1년 만에 괄목할 수준의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 상승 탓에 외화환산손실로 4163억원을 기록했다. 외화손실을 포함해 상반기 기타비용으로 잡힌 금액이 총 4955억원이다. 여기에 금융비용 등을 포함해 최종 반기순손익은 마이너스(-) 2595억원이 됐다. 회계상 대규모 손실에 부채비율은 6000%대로 상승했다. 상반기 말 기준 부분자본잠식 상태이고 1400원대 환율이 이어진다면 완전자본잠식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항공화물 사업에서 글로벌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항공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환율 때문에 놓쳤다. 대한항공이 올해 상반기 기록한 연결 외화환산손실만 무려 5055억원이다. 반기순이익 9804억원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기는 했으나 환율만 아니었다면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내 항공사들은 환율에 취약하다. 사업 특성 상 외화부채가 많기 때문에 당연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항공사들을 지배하는 '회계기준'도 환율에 대응하는 항공사들을 진땀 흘리게 하는데 한 몫한다.
항공사들이 현 회계기준에 적용받아 나타나는 현상들은 다음과 같다.
◇'화폐성항목' 부채에만 환율 변동 적용
#부채는 환율 변동에 따라 재무상태표 상 값이 달라지지만 항공사가 들여온 항공기 사용권 자산 값은 환율이 변동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즉 달러가 비싸지면 자산은 그대로지만 부채만 늘어나 자본이 줄어들어 부채비율이 상승한다.
이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제정한 국제회계기준(IFRS)을 따른 결과다. IFRS에 따르면 항공기 사용권 자산은 '비화폐성항목', 항공기 리스부채 등은 '화폐성항목'이다. 화폐성항목이란 '화폐' 혹은 '화폐로 회수하거나 지급하는 자산·부채'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연금이나 종업원급여, 현금배당 등이 있다.
IASB는 기업회계기준서를 통해 "IASB의 견해는 환율의 후속적 변동이 비화폐성자산의 원가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사용권자산의 재측정치에 변동을 포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다만 항공기 사용권 자산을 '비화폐성자산'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업계의 목소리가 분분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기는 전 세계를 비행하면서 달러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으로 100% 비화폐성자산으로 치부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라면서 "항공기는 화폐성자산과 비화폐성자산의 스펙트럼 속에서 중간 지대에 있는 자산인데 현 회계기준에 따르면 비화폐성자산으로 분류돼 환율 변동에도 가치가 고정된다"고 말했다.
만약 항공기 사용권 자산을 화폐성자산의 성격이 있다고 일부 인정한다면 환율 변동에 따라 보유중인 항공기 사용권 자산의 가치도 연동돼 대규모 환산손실이나 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기말 마감환율에 잔여부채 가치 '좌지우지'
#리스부채를 포함해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부채 평가는 기말 마감환율을 기준으로 한다. 만약 기말 마감환율이 1400원일 경우 항공사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달러부채 전량을 모두 1400원으로 계산한다. 추후 환율의 등락 가능성을 배제하고 현재 시점에서 달러부채를 계산한다는 의미다.
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매 보고기간말의 외화환산법은 '마감환율'로 환산한다. 다만 항공업계에서는 마감환율로 항공사의 재무 상태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처럼 환율이 급격히 상승한 시점의 경우 항공사들이 보유한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 가치가 불어나서 재무상황이 악화한다"라면서 "현 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기말 마감환율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항공사의 재무상태가 펀더멘털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처럼 영업이익이 이제 겨우 나기 시작한 기업의 경우 환율 때문에 대규모 손실이 나고 이것이 곧 재무상태 악화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반대로 환율이 1000원대 부근으로 내려갈 경우 외화환산이익이 발생해 항공사들의 재무상황이 좋아지는데 이 역시 실제 기초체력이 좋아졌다고 오인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향후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현재 환율로 잔여 부채의 총량을 계산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최근 몇 년 간의 달러 환율의 중간값을 반영하는 등 환율 변동 효과를 희석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계업계의 입장은 보수적이다. 한국회계기준원 관계자는 "동 기준은 IFRS를 적용받는 해외 기업에도 모두 해당해 국내 항공사가 해외 항공사 대비 불리한 상황에 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역시 국가별 대미 달러 환율 변동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유불리가 없다고 보기에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엔화나 스위스 프랑, 캐나다 달러처럼 원화 대비 달러에 대한 환율 변동성이 적은 화폐를 쓰는 국가 소속의 항공사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만큼 환율로 인한 실적 변동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강달러' 탓에 부채비율이 상승한 항공사들의 경우 자본시장내 크레딧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당장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신용도 측면에서 문제가 나올 수 있다"라면서 "금융권에서도 일정 수준의 부채비율을 넘어가면 여신을 줄이는 등 현금흐름 면에서도 경직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