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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앞두고 있는 한진그룹의 핵심은 지주사 '한진칼'과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이다. 오너 일가는 한진칼을 통해 한진그룹을 지배하고, 한진칼은 대한항공을 지배한다. 현재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숱한 일이 있었다. 2010년대 중후반 오너 일가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고 최근에는 대한항공 경영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항공업 빅딜을 준비 중이다.
이 모든 과정을 후방에서 조용하게 조력해온 인물이 있다. 하은용 한진칼·대한항공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다. 1988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한항공에 입사한 하 부사장은 한진그룹 내 CFO의 위상과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 부사장은 고(故)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현 한진그룹 오너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런 인물이 오르는 자리가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CF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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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한진그룹 학연의 상징과 같은 학교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를 졸업했다. 하 부사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국제 MBA(iBear) 25기 과정을 밟았다. USC MBA 과정을 밟은 다른 경영인으로는 현 대한항공 대표이사인 우기홍 사장이 있다.
한진그룹 오너들은 대부분 USC MBA 과정을 밟거나 USC 학사 과정을 수료했다. 고(故) 조수호 한진해운 전 회장을 비롯해 고 조양호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모두 USC에서 학업을 수료했다. 특히 고 조양호 회장은 USC 재단의 이사직도 맡아왔었다. 현 한진칼의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 사장 모두 USC를 졸업했다.
하 부사장은 오너들의 개인기업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88년부터 대한항공 자금 업무를 맡았던 하 부사장은 2009년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조현민 사장 등 오너 일가들이 개인 지분을 쥔 한진지티앤에스라는 기업의 대표이사를 맡는다. 당시 하 부사장은 곧 상무급으로 승진할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인물이 덜컥 오너 개인 회사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셈이다. 이 회사는 훗날 한진정보통신으로 자산을 모두 양도했다.
이후 2012년 하 부사장은 ㈜한진의 재무담당 상무로 있다가 이듬해부터 대한항공으로 이동해 기획 업무를 맡았다. 사업기획에서 실무를 맡다가 다시 본래 자리인 재무로 돌아온 시점은 2016년이다. 이때는 재무본부의 총괄격인 재무본부장으로 선임됐다. 이듬해 2017년에는 상무 다음 직급인 '전무B'로 승진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20년에는 현 직급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무B 다음 직급인 전무A를 뛰어넘어 바로 부사장이자 CFO로 부임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하 부사장은 한진칼의 CFO로도 부임했다.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조원태 회장의 한진그룹이 탄생하면서 조 회장의 최대 조력자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사업기획에서 재무로 돌아왔던 2016년 이후 하 부사장이 마주했던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긍정적으로 흘러간 모양새다. 2018년 점화했던 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3자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을 비롯해 대한항공 재무개선 작업, 아시아나항공 빅딜 추진 등 최근 그룹 역사 그 후면에는 하 부사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