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재 기업 엘앤에프의 운전자본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작년 동종업계 경쟁사인 에코프로비엠은 양극재 업황 악화 속에서도 흑자를 낸 반면 엘앤에프는 영업손실과 더불어 현금흐름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배경에는 재고를 비롯해 비대한 운전자본이 꼽힌다. 운전자본 관리는 작년 부임한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류승헌 부사장의 직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는 작년 연결 기준 매출 4조6441억원, 영업손실 22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1560억원을 낸 에코프로비엠과는 다른 모습이다. 같은 양극재 업체로 비슷한 경영 환경 속에 놓인 두 업체지만 한해 농사의 결과물은 달랐다.
우선 두 업체 모두 작년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2022년 대비 작년 리튬 등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서 원재료 매입 원가 대비 시가가 하락했다는 뜻이다. 평가손실액은 매출원가로 반영돼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두 업체가 기록한 평가손실액에 차이가 있다. 엘앤에프는 평가손실로 2382억원을, 에코프로비엠은 1653억원만을 손실액으로 잡았다.
◇'원재료 무한 매입' 재고가 전체 자산의 35%…평가손실 '직격탄' 한 쪽은 흑자, 한 쪽은 적자로 갈라서게 만든 주 요인인 '평가손실액'의 규모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답은 양 사가 보유한 재고자산에 있다.
엘앤에프는 작년 말 연결 기준 재고자산으로 1조1634억원을 기록했다. 자산총계 3조3514억원 대비 34.7%에 해당하는 금액이 재고로 잡혀있다.
엘앤에프의 재고자산은 2022년부터 비대해졌다. 2021년 말 기준 전체 자산 대비 재고자산의 비중은 17.1%에 불과했다. 그러다 전기차 배터리 수요 급증과 더불어 양극재 시장이 급성장했던 2022년 재고자산의 비중이 당해 말 기준 40.6%까지 치솟았다.
재고 중에서도 '원재료'의 비중이 상당하다. 엘앤에프의 재고자산은 2021년 870억원이었다가 2022년 말 4229억원, 작년 말에는 6677억원으로 늘어났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양극재 시장을 체감하게 하는 숫자다.
문제는 작년 2022년 대비 리튬 등 양극재의 원재료 가격이 급락했다는 것이다.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 판가에 반영돼 생산 단가 대비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원가 대비 낮은 시가로 형성된 '악성 재고'들이 작년 말 기준으로 1603억원 규모였다. 원재료 재고 중 24%에 해당한다.
이외 제품과 반제품 등에서 발생한 평가충당금액의 합은 작년 말 기준 2508억원이었다. 작년 재고자산 평가손실액 2382억원은 2508억원에서 2022년 말 평가충당금액 126억원과의 차감을 통해 매출원가에 실현됐다.
◇엘앤에프, 재고 상태로만 '3달치' 꽁꽁…22%는 악성 재고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자산 대비 재고자산 비중이 30%를 넘긴 적이 없다. 2020년 말과 2021년 말 각각 19.6%, 23.8%를 기록한 에코프로비엠은 2022년 말에도 25.4%, 작년 말에도 전체 자산 대비 재고 비중이 25.4%였다. 작년 말 에코프로비엠의 재고자산은 1조1087억원이다.
에코프로비엠도 엘앤에프와 마찬가지로 작년 리튬 등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역래깅 효과를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엘앤에프 대비 보유 재고가 적었기 때문에 원재료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충당금도 적었다. 작년 에코프로비엠은 원재료 재고 4191억원 중 531억원만을 평가충당금으로 잡았다. 전체 충당금의 합은 1729억원으로 2022년 말 76억원 대비 평가손실액인 1653억원의 차이를 보였다.
작년 전체 재고자산에서 평가충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엘앤에프가 21.6%, 에코프로비엠이 15.6%였다.
재고자산 평가손실액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재고의 덩치를 줄여야 한다. 빠르게 채권화가 되는 등 기업의 '활동성'이 높아져야 한다. 이 과정을 아울러 보여주는 수치인 '재고자산회전율'도 두 업체 간 큰 차이가 있다.
작년 말 기준 에코프로비엠은 약 54.3일마다 한 번씩 재고가 팔렸다. 반면 엘앤에프는 이 기간이 91.2일이다. 에코프로비엠은 재고가 한 달 반만 묶여있었던 반면, 엘앤에프는 3달이나 묶여있었다는 뜻이다. 재고가 빨리 채권으로 이어지지 못하니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른 평가손실 효과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활동성 지표도 엘앤에프는 에코프로비엠 대비 열위한 모습을 보인다. 연결 기준 에코프로비엠의 2022년과 작년 총자산회전율은 각각 2.23배, 1.78배였다. 엘앤에프는 2022년에는 1.71배, 작년에는 1.46배를 기록했다. 현금→재고→채권→현금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에코프로비엠 대비 다소 경색됐다는 뜻이다.
작년 9월 CFO로 부임한 류승헌 부사장의 과제 중 하나로 '운전자본관리'가 꼽히는 배경이다. 엘앤에프는 작년 운전자본변동 분을 반영한 영업활동현금흐름도 -3746억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