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작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롯데EM)를 인수하면서 전지박 사업을 직접 시작했지만 이미 2020년부터 전지박 사업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2020년 9월 롯데케미칼의 자회사 롯데정밀화학이 솔루스첨단소재 인수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솔루스첨단소재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것은 재무적 투자자(FI)들이지만 이들이 추후 엑시트할 때 롯데정밀화학이 지분 인수자로 나설 수도 있다.
만약 솔루스첨단소재의 경영권을 훗날 롯데그룹이 쥔다면 롯데그룹은 롯데EM과 솔루스첨단소재를 품고 글로벌 전지박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늘릴 수 있다. 롯데EM의 말레이시아 네트워크와 솔루스첨단소재의 유럽 네트워크를 모두 롯데가 취할 수 있는 셈이다.
관건은 FI들의 엑시트 시점과 당시 롯데그룹의 판단, 더 깊이 들어가면 롯데정밀화학의 재무 상태다. 롯데정밀화학은 우수한 재무구조와 유동성을 갖추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2015년 롯데그룹이 삼성그룹과의 화학사 '빅 딜'을 통해 인수해온 기업이다. 에틸렌, 프로필렌 등 롯데케미칼에서 생산하는 기초 화학 제품이 아닌 에피클로르히드린(ECH), 메셀로스, 애니코드 등 스페셜티 케미칼을 제조한다. 글로벌 시황에 크게 휘둘리는 기초화학 제품 대비 스페셜티 제품들은 수익성이 일관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롯데그룹 편입 후 고수익 기조를 매년 이어오고 있다. 작년 별도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조7658억원, 1564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 8.9%를 기록했다.
직전 해까지는 영업이익률 두 자릿수를 기록해왔다가 작년 주춤했던 수치가 8.9%다. 작년 주요 제품이자 이익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ECH의 가격이 2022년(톤당 2170달러) 대비 하락(1211달러)하면서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
수익성이 주춤했지만 2015년 인수 이후 롯데정밀화학은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바탕으로 자본을 크게 확충했다. 작년 말 연결 이익잉여금은 1조9524억원으로 2015년 말 7130억원 대비 2.74배 늘어났다.
매년 고수익을 거두는 롯데정밀화학의 또 다른 특징은 유형자산 취득 등 시설 투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롯데로 넘어왔던 2015년 말 기준 롯데정밀화학의 연결 유형자산은 7609억원이다. 인수 후 만 10년을 향해가는 작년 말 기준 유형자산 장부가액은 7841억원이다. 매년 감가상각비로 타는 금액을 보전하는 수준만큼의 CAPEX 지출만 있었던 셈이다.
불어난 잉여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곳간에 가득 쌓인 보유 현금이다. 작년 말 롯데정밀화학의 별도 현금성자산은 4618억원이다. 연결로도 4686억원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유휴 현금이 많아 작년 초 롯데건설이 메리츠증권으로부터 현금 수혈을 받을 때 3000억원을 대여해주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롯데정밀화학의 곳간에는 8000억원에 육박하는 현금이 채워져있었던 셈이다. 올 초 롯데정밀화학은 롯데건설에 재차 2000억원을 대여해주는 그룹의 '자금 창고' 역할을 이어갔다.
롯데정밀화학은 넘치는 현금을 바탕으로 2020년 9월 솔루스첨단소재에 간접 투자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스카이레이크가 솔루스첨단소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만든 펀드에 2900억원을 출자했다. 펀드내 유한책임사원으로서의 투자였기 때문에 현재 솔루스첨단소재의 경영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주목할 점은 FI의 엑시트 시점이다. 현재 이차전지와 전지박 업계의 시황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근 시일 내에 FI들이 엑시트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업계는 전지박 시황이 회복하고 솔루스첨단소재의 유럽·북미 공장이 돌아가는 시점에 엑시트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솔루스첨단소재의 최대주주는 '스카이레이크 롱텀스트래티직 인베스트먼트 주식회사'로 지분율은 53.16%다. 2020년 당시 두산과 두산그룹 오너들로부터 약 7000억원에 지분을 인수했다. 초기 투자 과정에서 롯데그룹의 자금력이 동원됐던 만큼 몇 년 뒤 엑시트 시점에 자금력을 충전해온 롯데정밀화학이 나설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