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시장에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이 찾아오면서 배터리 업계는 '투자 조절'을 외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삼성SDI는 전년 대비 투자 규모가 상당 수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혀 업계의 관심을 모은다. 그간 경쟁사들이 앞다퉈 투자 자금을 태울 때 움츠리고 있었던 삼성SDI도 본격적으로 '외형 성장'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SK 10조 투자할 때 삼성은 '4조'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종성 삼성SDI 부사장은 지난달 말 삼성SDI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공장 증설, 미국 합작공장(JV) 신규 공장 건설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면서 "전년 대비 투자 규모가 상당 수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 대비 매년 기록하는 자본적지출(CAPEX)이 적었다. 대표적으로 작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작년 연결 기준 CAPEX로 각각 10조253억원, 9조804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삼성SDI는 작년 CAPEX로 4조607억원만을 기록했다. 2022년에도 LG엔솔은 6조2982억원, SK온은 4조8977억원을 CAPEX로 썼는데 삼성SDI는 2조8135억원만을 유·무형자산 취득에 썼다.
이 결과 3사 간 자산총계 순위는 불과 약 2년 전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다. 2021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배터리 3사 중 삼성SDI가 자산총계 25조833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LG에너지솔루션(23조7641억원)과 SK온(10조9788억원)이 잇고 있었다.
다만 작년 말 배터리 3사 중 자산총계가 가장 많은 곳은 삼성SDI가 아닌 LG에너지솔루션(45조4371억원)이다. 삼성SDI는 34조389억원을 기록했다. SK온의 자산총계는 33조2507억원으로 삼성SDI와 비슷한 규모의 자산을 보유했다.
◇3년 누적 FCF -2조 불과, LG·SK는 -15조 이상…투자 여력 충분 상대적으로 투자에 활발하지 않았던 삼성SDI는 LG와 SK에 비해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 FCF)의 추세가 비교적 양호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2021년부터 작년까지 3년 누적 FCF가 각각 -14조9969억원, -20조482억원이다. 반면 삼성SDI의 3년 누적 FCF는 -2조2106억원에 불과하다. FCF는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CAPEX 취득액을 제한 값으로 산출했다.
삼성SDI의 FCF가 양호한 배경은 국내 배터리 경쟁사들에 비해 비교적 적었던 CAPEX 취득액도 있었지만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잘 뽑아냈다는 점도 한 몫했다. 삼성SDI는 최근 3개년 간 2조원대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일관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2022년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은 -5798억원을, SK온은 -2조955억원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기록하는 등 적자를 낼 때도 삼성SDI는 2조6411억원이라는 견조한 실적을 냈다. 작년에도 삼성SDI는 영업활동현금흐름으로 2조103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실시한 1분기 실적발표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5조1309억원, 2674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 5.2%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매출 5조3548억원, 영업이익 3754억원에 비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었지만 최근 성장세가 둔화한 전기차 시장 업황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견조한 현금창출력은 그간 움츠려오면서 길러왔던 재무 체력을 만나 삼성SDI의 투자 여력을 극대화할 전망이다. 잉여현금흐름에서 상대적으로 큰 '구멍'이 없었던 삼성SDI는 작년 말 기준 배터리 3사 중 차입금의존도가 가장 낮다. 향후 투자를 위한 차입 여력이 가장 많은 셈이다.
작년 말 기준 삼성SDI의 연결 총차입금은 5조7989억원으로 차입금의존도는 17%에 불과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총차입금은 각각 10조9323억원, 16조6258억원이다. 차입금의존도는 LG에너지솔루션은 24.1%, SK온은 50%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