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롯데그룹의 재무적 체력이 떨어진 데는 '주포' 역할을 하는 롯데케미칼이 부진 영향이 컸다. 어두운 석유화학 업황이 외부요인이라면 그룹 내부적으로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 인수와 롯데건설 유상증자 지원으로 빚이 급증했다.
그 시기가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던 2022년에 집중돼 있다. 당시 롯데케미칼 이사회는 미국 전지소재 법인 설립과 롯데건설 유증,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증자 안건에 찬성, 상당한 유동성을 소모했다. 그 중심에는 사내이사인 신동빈 회장이 있었다.
◇롯데케미칼, 2022년 곳간 소진…순현금에서 순차입으로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롯데그룹 매출의 30% 가량이 롯데케미칼에서 나왔고 롯데그룹의 차입금 중 20% 이상이 롯데케미칼에서 들어왔다. 그룹의 캐시카우이자 주요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는 계열사다.
이런 롯데케미칼이 차입금보다 보유현금이 많은 순현금 상태에서 순차입 기조로 바뀐 것은 2022년이다. 2021년 말 순현금 8164억원에서 2022년 말 순차입 2조6045억원으로 바뀐다. 작년 말에는 6조1036억원, 올 6월 말에는 7조545억원으로 늘어난다. 2022년이 분기점인 셈이다.
롯데케미칼의 주업인 석유화학 업황은 중국 업체들에 치여 경쟁이 힘들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거기에 더해 돈 쓸 일이 많았다. 롯데케미칼의 2022년 이사회 활동 내역을 보면 SK가스와의 Air Liquide Korea 합작사업과 GS에너지 합작사업 투자 변경안이 올라왔다.
5월에는 타법인(일진머티리얼즈) 출자를 위한 바인딩 오퍼(Binding Offer) 제안 승인의 건이, 6월에는 미국 전지소재 법인(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설립 및 유상증자 참여 건, 7월에는 미국 양극박 사업 관련 유상증자 참여 승인 건이 올라왔다. 당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전 참여에 시동을 걸던 시기였다.
그 해 11월에는 롯데건설 유상증자 참여 승인 안건이 상정됐다.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문제를 앓던 롯데건설을 살리기 위해 계획에 없었던 6000억원을 지원했다. 이 때문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1조원대 유상증자를 실시해야 했다. 롯데지주, 롯데물산 등 케미칼의 주주사들이 참여해 5500억원을 투입하면서 그룹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2022년 당시 이사회, M&A·유증 안건 모두 찬성 당시 롯데케미칼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과 사외이사 6명 등 11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신동빈 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교현, 이영준, 황진구 등 롯데케미칼 3대표, 강종원 화학군HQ CFO 및 재무부문장이다. 오너와 CEO, CFO가 포진해 있다.
사외이사로는 노동전문 관료 출신 전운배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 고문과 강정원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최현민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남혜정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 조운행 전 우리은행 부행장, 차경환 전 수원지검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신 회장은 일진머티리얼즈 바인딩 오퍼 제안 승인 건에 참여, 찬성의사를 표시했다. 다만 6월에 열린 미국 전지소재 법인(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설립 및 유상증자 참여 승인의 건은 불참했다.
2022년 10월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급히 빌려주는 금전소비대차 계약 체결 승인안에 올라왔을 때는 불참했으나 11월 롯데건설 유상증자 참여안에는 찬성했다. 그 뒤 11월 18일 이사회에 상정된 롯데케미칼 유상증자 안건에도 찬성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와 롯데건설 지원, 롯데케미칼 유상증자 등 롯데케미칼의 굵직한 자금조달과 투자에는 신 회장의 의중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