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국내 대표적인 원자력발전 사업자다. 동시에 한국전력(한전)의 자회사라는 정체성도 지니고 있다.
한수원은 최근 한전 경영난의 유탄을 맞아 수익성이 계속 악화됐다. 발목을 잡은 건 '정산단가'다. 한전이 전력을 사들일 때 책정하는 가격이다.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의 정산단가는 연료비 급등을 감안해 상향 책정한 반면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오히려 낮추는 기조를 설정했다. 영업 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전력 구입 부담을 상쇄하는 한전의 움직임이 한수원 이익 창출력을 갉아먹은 모양새다.
◇SMP에 '정산조정계수' 연동 한수원의 본업은 원자력발전소를 집중 가동하면서 전력을 만들어 파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매출의 97.2%인 10조3139억원을 발전 부문에서 창출한 대목이 방증한다. 생산한 전기를 사들이는 주체는 한전이다.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값을 산정하면서 계통한계가격(SMP)을 활용한다. 전력 생산에 투입한 연료가 다르더라도 최종 산출물인 전기는 동일한 성격을 갖춘 만큼 일괄적인 매입가를 책정하겠다는 취지가 녹아들었다. 발전기별 연료값 등 변동비 중에서 가장 높은 값을 SMP로 책정해 전력 구입가에 반영해왔다.
원자력 에너지는 석탄, 천연가스(LNG) 등과 견줘 전기 생산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축에 속한다. 10년 넘는 장기 계약을 토대로 우라늄을 수입하는 데다 다른 연료와 비교하면 시세 변동성이 낮기 때문이다. SMP와 변동비의 격차가 큰 만큼 원자력 발전 사업자가 많은 이익을 실현할 여지가 존재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국이 2008년 이래 '정산조정계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정산조정계수는 SMP에 연동된 할인율로 제로(zero)에 근접할수록 한전에 전기를 내다파는 발전 업체가 가져가는 수익이 줄어든다. 한전이 전력 구매에 따른 부담을 줄일 방안을 모색한 움직임과 맞물렸다.
2022년 이래 공급망 불안 여파로 국제 원자재 값이 급등하자 한전은 석탄이나 LNG 발전을 겨냥한 정산단가를 높게 설정하는 기조를 구사했다. 대신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단가를 낮게 매기는 방향을 택했다. 정산단가는 전력 거래 시장에서 판매하는 전기에 책정한 가격이다. SMP에서 변동비를 뺀 값에 정산조정계수를 적용한 뒤 변동비를 다시 포함했다.
발전 연료에 따른 정산단가 책정 기조가 달리 나타난 배경에는 한전의 경영 악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간 전기요금 인상 수준에 제약을 받으면서 영업 적자가 가중되는 상황을 감안했다. 설상가상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들이면서 발생하는 재무적 압력이 가중되지 않도록 상쇄하는 취지가 작용했다.
◇'전력판매가 상향' 석탄·LNG 대조, 'EBITDA마진율·OCF' 악화 올해 3월 원자력 발전의 정산단가는 킬로와트시(㎾h)당 50.5원으로 2022년 3월 59.3원과 견줘보면 14.8%나 줄었다. 같은 기간 유연탄 발전 정산가격이 149.7원에서 176.4원으로 17.8% 상승하고 LNG 발전 정산단가가 218.4원에서 270.5원으로 23.9% 오른 대목과 대조적이다.
전력 판매가가 좀처럼 오르지 못하면서 한수원의 수익성이 저하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연결기준 영업이익률의 하락이 방증한다. 2020년 13.2%를 기록했던 이익률은 2021년 8.5%, 2022년 6.1%로 낮아졌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손실 2512억원으로 나타나면서 2022년 1분기 6560억원 영업이익 실현과 견줘 적자로 돌아섰다.
매출액 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비중 역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20년 49.1% △2021년 47% △2022년 44.5%로 계속 하락했다. 올해 1~3월 EBITDA는 매출의 36.6%로 전년동기 55.1%보다 18.5%포인트(p) 낮은 수치를 드러냈다.
이익 실현이 어려워지면서 전력 생산과 판매 중심의 본업으로 여윳돈이 흘러들기 어려운 여건에 처했다. 한수원의 영업활동 현금흐름 추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작년 1분기만 하더라도 1조1969억원이 순유입됐다. 하지만 2023년 1분기에는 영업활동으로 2635억원이 순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