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글로벌본드(global bond)'를 발행한지 20년째 되는 해다. 현재 총차입금 13조원의 30%를 웃도는 4조원이 외화 채권을 찍어내면서 확보한 자금이다.
달러채에 집중하지 않고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등으로 다양한 통화로 된 회사채를 발행했다. 5년물과 10년물 중심으로 발행하면서 장기 차입 기조를 확고하게 다졌다.
국내를 벗어나 해외 자본시장으로 눈을 돌린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자금원을 다각화하는 기틀을 제공했고 조달 비용을 절감하는 이점도 누렸다.
◇2003년 첫선, '달러·엔·스위스프랑' 보폭확대 한수원은 2001년 출범 이래 '해외채권'을 자금 확보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2003년에 만기 5년을 설정한 유로본드를 2억달러 발행하면서 첫 발을 뗐다. 발전소를 짓는 데 필요한 실탄을 국내 시장에서 얻는 데 그치지 않고 국외로도 보폭을 넓혔다. 이후 한동안 해외채권을 활용한 자금 조달 움직임은 자취를 감췄다.
글로벌본드 발행이 다시 탄력을 받은 시점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다. 한수원은 규제를 완화한 정부 기조에 부응해 국내 공기업 중 처음으로 달러 표시 채권을 10억달러 규모로 발행했다. 당시 정부가 공기업의 유동성 확충을 돕는 취지에서 외국 금융권 차입을 억제하던 기존 방침을 탈피한 대목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후 달러로 표시된 회사채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통화로 표시된 채권을 발행하는 기조를 세웠다. 2009년에는 일본 엔화 사채를 찍어내 100억엔(950억원)을 얻었다. 2019년에는 스위스 자본시장에 문을 두드려 3억 스위스프랑(3500억원)을 확보했다.
자금을 충당하는 경로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조달 비용을 낮추는 이점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2019년 스위스프랑으로 표시된 회사채를 발행한 사례가 단연 돋보인다. 당시 채권의 트렌치(만기 구조)는 5년과 8년으로 짰다. 5년물에 매긴 실질금리는 -0.155%였는데 한국 내에서 동일한 만기로 발행하는 채권과 견줘봐도 34bp 낮은 수준이었다. 덕분에 약 59억원의 이자 지급분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녹색채권 발행도 해외서 시작, '5·10년' 만기 집중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하자 해외 시장에서 녹색채권(그린본드)을 발행하는 승부수도 던졌다. 2018년에 6억달러(8600억원) 수준으로 5년 만기 회사채를 찍어낸 사례가 거론된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와 달리 원자력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적극 어필한 노력이 주효했다. 해외에서 쌓은 경험은 2022년 한수원이 국내에서 첫 녹색채권을 발행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200억원을 조달해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업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힐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한수원의 외화사채 발행잔액은 4조2217억원이다. 총차입금 13조845억원과 견줘보면 32.3%를 구성한다. 올해 7월에 상환 만기가 도래하는 6억달러(7823억원 )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제외하면 나머지 3조4000억원은 장기성 차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발행한 해외채권의 만기를 살피면 5년물과 10년물 중심으로 편제돼 있다. 미상환 잔액 기준으로 가장 비중이 높은 건 5년물로 2조6320억원이다. 전체 4조2217억원 대비 62.3%다. 10년물의 잔액은 1조4465억원으로 34.3% 규모를 차지한다. 3년부터 30년까지 만기를 다양하게 구성한 원화 채권과 마찬가지로 장기 차입에 부응하는 기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