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에서 동일인(총수)인 이해욱 회장이 등기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계열사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철저하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동일인은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을 가리킨다. 이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DL의 최대주주인 대림의 최대주주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DL그룹 41개 계열사(지난해 5월 기준) 가운데 이해욱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곳은 없다. 이 회장은 지주사인 DL과 핵심 계열사인 DL이앤씨, 그리고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대림 등 3곳에서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일가친척으로 시야를 넓혀도 다르지 않다. 1938년생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아버지 이준용 명예회장은 DL 임원 명단에 포함돼 있지만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미등기임원이다. 이 회장은 누나 1명과 남동생 2명, 여동생 1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DL그룹 계열사에 등기임원인 가족은 없다.
남동생 가운데 이해창 씨는 현재 무역과 화학 업체인 켐텍의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등기임원으로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켐텍은 2022년 친족독립경영이 인정돼 DL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만약에 현재도 DL그룹 소속이었다면 이해창 대표는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총수 일가다.
이 회장은 LG그룹 총수 일가인 김선혜 씨와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모두 나이가 20대 전후로 경영 일선에 참여할 만한 나이는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자녀들이 그룹 지배구조 측면에서 중요한 대림과 DL의 지분을 가졌는지 불명확하다.
이 회장이 처음부터 법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약한 미등기임원으로 DL그룹 총수로 있던 건 아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9년 5월 기준 이 회장은 2011년부터 대림산업의 등기임원이었다. 이 기간 대부분 대표이사를 지냈지만 2020년에 등기임원에선 물러났다. 대림산업은 2021년 DL(종속법인)과 DL이앤씨(신설법인)로 분할됐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2016년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 폭언 혐의로 1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2019년에는 계열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2억원의 벌금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가 등기임원을 뗀 2020년은 기소된 바로 다음 해다.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여부와 시점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상장 계열사 DL과 DL이앤씨가 최근 공시한 '주주총회소집공고'에는 총 8명의 이사 후보가 추천됐는데 이 회장의 이름은 없다. 이 회장의 다른 가족이 포함되지도 않았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상법에서는 지배주주와 경영진을 감시하는 사외이사를 제외한 다른 이사에 대해서는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업이 정관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DL과 DL이앤씨는 사외이사 아닌 이사의 자격에 대해 정관에서 별도 조건을 두지 않았다. 단 부정행위를 범한 인물을 '무관용'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가령 DL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의 임원 선임 절차 항목에서 "당사는 법적 처벌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 손상, 기업 신용 하락 등 주주권익 침해에 책임이 있는 위반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처리하고 있다"며 "특히 금품수수, 횡령, 배임, 고의에 의한 사손 초래 등 부정한 행위에 대해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와 관련해서 결정된 게 없는 것으로 안다"며 "본인의 의사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