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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현대글로비스가 설립 이후 자산은 290배, 이익은 190배 이상 성장한 데에는 현대자동차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들이 한몫했다. 이들은 비상근이사(기타비상무이사)로 활동하며 대주주를 대신해 수년 동안 경영진들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등 현대글로비스의 초기 안정화에 기여했다.
현대글로비스는 2001년 설립됐다. 당시 사명은 지금과 다른 한국로지텍이었다. 이후 2003년 글로비스, 2011년 현대글로비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 사이 2005년에는 코스피 상장에 성공했다. 최초에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출자해 설립한 까닭에 큰 주목도 받았다.
설립 목적은 현대차그룹의 물류 효율화였다. 전 계열사의 물류 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별도의 계열사를 두는 게 비용과 속도 측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1970년생으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한 정의선 회장의 승계 자금도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이는 정 회장이 직접 출자한 배경으로 꼽혔다.
이처럼 사업과 지배구조 양쪽에서 모두 현대글로비스의 위치는 중요했다. 이 때문에 대주주인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대신해 경영진을 지원하고 관리·감독하는 비상근이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비상근이사는 대개 기타비상무이사를 가리킨다. 이사회 일원으로서 주요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선택은 이정대 부회장과 채양기 사장이었다. 채 사장은 2006년에, 이 부회장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비상근이사로 활동했다. 둘은 현대차 CFO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채 사장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이 부회장은 채 사장의 뒤를 이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차 재경본부를 이끌었다.
또 두 임원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은 인물들이다. 채 사장은 1992년 정주영 창업회장이 대선에 뛰어들었을 때 통일국민당 법률지원실장으로 일하며 정 명예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98년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 경영을 맡으면서 채 사장은 중용되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과거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을 지낼 때 재경라인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치밀하고 숫자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 경영을 맡은 뒤 현대차로 불러들인 현대정공 출신 중 한 사람이다.
두 임원은 그룹 컨트롤타워 조직인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기조실은 계열사별 목표 설정과 역할 조정을 하고, 그룹 차원의 재무와 인사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중요한 자리에 이 부회장과 채 사장을 꾸준히 등용했다. 이 부회장은 2012년, 채 사장은 2006년 현대차그룹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