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상장법인은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면서 불특정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온다. 그 대가로 상장사 이사회는 건전한 경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받는다. 사외이사 선임과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각종 공시 의무 등이다. 다만 별도기준 총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은 의무강도가 약하며 당국의 감시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회색지대(Gray Zone)'에 존재하는 이들 기업의 이사회를 면밀히 살펴본다.
노루페인트와 노루홀딩스는 4년 전 금융투자업계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금투업계 인사를 이사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이례적이이었다. 이들이 이사회에 진입한 후 노루홀딩스는 한영재 회장의 장남 한원석 당시 노루페인트 전무가 주도하는 신생 법인에 출자를 단행하고 신기술사업투자조합 지분을 매입했다.
◇ 노루홀딩스·노루페인트 금투업계 인사 이례적 사외이사 영입
2020년은 노루그룹 지배구조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한영재 노루홀딩스 회장 장남인 한원석 당시 노루페인트 전무(현재 부사장)가 2020년 정기주총에서 그룹 주력사 노루페인트 사내이사로 선임돼 이사회에 진입했다. 2014년 노루홀딩스 본부장 직책으로 입사한지 6년 만에 주력 계열사 등기이사가 되면서 후계구도를 구축한 셈이다.
노루페인트는 동시에 신규 사외이사에 유영석 당시 아이스템자산운용(현 도미넌트자산운용) 대표를 선임했다. 노루페인트 이사회에 금융투자업계 인사가 진입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유 당시 대표가 지분 상당량을 보유하고 경영을 주도하고 있던 도미넌트운용은 당시 펀드 전체 운용규모가 51억원에 불과한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였다.
신규 사외이사 선임 직전까지 노루페인트 이사회의 한축을 맡아온 사외이사는 한동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와 김지홍 연세대 경영대 교수였다. 두 교수는 각각 2009년과 2010년 선임돼 신규 사외이사 선임 직전 10여년 간 자리를 지켜왔다. 한원석 당시 전무가 노루페인트 이사회에 진입한 것만큼이나 사외이사 변화에도 시장의 이목이 집중됐다.
노루페인트는 그간 8명의 이사로 이사회를 꾸려왔다. 사외이사는 2명을 선임해 전체의 25% 비중을 유지했다. 지난해 말 노루페인트의 별도기준 총자산은 6686억원.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의 상장법인은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사외이사 비중이 25% 이상이면 된다. 노루페인트는 현행법이 정하고 있는 사외이사 최소 비중을 꾸준하게 유지해왔다.
노루홀딩스도 같은 시기 유은상 YJA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이사회 구성에 변화를 가져왔다. 노루홀딩스의 경우 2007년 C&F 캐피탈의 정준호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바 있지만, 1년 만에 자진사퇴한 바 있다. 이후에는 진인주 전 인하공대 총장과 김연성 인하대 교수 등이 각각 오랜기간 사외이사로 일했다.
◇ 빨라지는 투자행보…신규 사업은 일장춘몽
지주와 주력 계열사가 사외이사 자리에 금융투자업계 인사를 영입한 이후 노루그룹의 투자행보는 빨라지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먼저 2021년 11월 노루홀딩스와 계열사 디아이티는 신생 인테리어 플랫폼 '두꺼비선생'에 출자를 단행했다. 당시 디아이티(DIT)는 한원석 당시 노루페인트 전무가 대표직을 맡아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루홀딩스 측 유은상 사외이사와 노루페인트의 유영석 사외이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금융투자업계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시도가 드물었던 만큼, 일련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란 의견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유은상 이사의 경우 노루홀딩스 출자 안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꺼비선생의 성과는 좋지 않았다. 올해 6월 말 두꺼비선생은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한채 청산 절차를 밟았고 노루홀딩스는 두꺼비선생 투자금을 전액 손상으로 인식한 뒤 그룹 자회사에서 제외했다. 지난 3월 말 노루페인트 유영석 이사는 총 4년의 임기를 끝으로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최영철 변호사가 선임됐다.
노루페인트는 최영철 변호사를 신규 이사로 선임하는 배경에 대해 '전문지식과 폭넓은 식견을 통해 객관적 시각에서 이사회 전략적 의사결정에 기여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유영석 전 이사는 현재 도미넌트자산운용 주주로 남아있을뿐, 해당 운용사에서 이렇다 할 직책을 맡고 있진 않은 상태다.
노루홀딩스 측의 유은상 이사는 2026년 3월까지 잔여 임기를 남겨놓고 재직하고 있다. 유 이사 선임 이후 노루홀딩스는 2022년 4월 사이프러스트리 에프피 엔코어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에 60억원(전체의 7.6% 비중) 투자를 집행하기도 했다. 해당 신기사조합은 LX그룹 계열사 자금도 받아 친환경 분야 복수의 비상장 기업에 투자를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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