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콘덴서의 이사회 구성원 8명 중 2명만 사외이사이며 나머지는 오너인 오영주 회장을 비롯해 모두 사내이사다. 별도기준 총자산이 2조원 미만이라 이사회 구성원의 4분의 1만 두어도 무방한 곳이다.
1998년 사외이사 제도 도입 후 은행권 출신들이 그 자리를 맡아왔다. 초창기에는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 출신들이 사외이사로 왔지만 2006년부터는 신한은행 출신들이 자리를 채웠다. 주거래은행인 만큼 이들과는 비즈니스 관계 목적이 숨겨져 있다.
◇1998년 사외이사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상업은행 출신들 1956년 설립된 삼화콘덴서(당시 오한실업)은 1976년 6월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업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8년 국내에 사외이사 제도가 처음 도입되자 그 해부터 임원진에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상장사는 이사회 구성원 수의 4분의 1 이상만 사외이사로 두면 된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법인은 사외이사가 3명 이상이면서 그 비중이 과반이어야 한다. 삼화콘덴서는 작년 말 별도기준 총자산이 2709억원으로 2조원 미만이다. 상장사의 의무인 4분의 1 이상 사외이사 선임만 하면 된다.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도 비껴나 있다. 자산총액이 2조원 미만인 상장회사이기 때문이다. 이사회 내 별다른 위원회가 없고 전체 구성원 8명 중 2명의 사외이사만 두고 있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한 별도교육도 없다. 이사회 지원을 위한 별도조직 또한 없으며 재무팀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사외이사 구성은 은행원 출신으로 편중돼 있다. 특히 주거래 은행 출신 인사들이 줄곧 사외이사를 맡았다.
1998년 도입한 첫 사외이사는 이경희 전 상업은행 신탁부장이었다. 1999년에는 윤웅수 전 상업은행 호남영업본부장이 사외이사로 추가됐다. 상업은행은 외환위기를 맞아 1998년 한일은행과 대등 합병을 통해 한빛은행으로 거듭났으며 이는 현 우리은행의 전신이다.
당시 삼화콘덴서는 한빛은행으로부터 수출지원금융 등으로 13억원, 수출설비와 외화설비로 각각 25억원, 19억원의 대출을 쓰고 있었다. 주채권은행이었던 상업은행의 자산이 한빛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삼화콘덴서가 가진 채무도 같이 이전됐다. 주거래은행의 주요 인사를 사외이사로 두며 일종의 보은을 한 셈이다. 사외이사와 이사회의 관계가 독립적인 견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주거래 신한은행과 돈독한 비즈니스 관계 변화는 2006년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은행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업은행 출신 이경희 이사가 빠진 자리에 김승현 전 신한은행 학동지점장이 앉았다. 2007년에는 윤웅수 사외이사 임기가 종료되면서 후임으로 신한은행 검사부 출신 김영천 사외이사가 뒤를 이었다.
이때부터 19년 가까이 삼화콘덴서의 사외이사는 신한은행 출신들로만 채워졌다. 올 3월 말 기준 최기환 전 신한은행 강남본부장과 박수근 전 신한은행 부천중동 지역단장이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다. 여전히 사내이사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견제 기능을 할 사외이사는 2명, 그것도 주거래은행 임직원이다.
삼화콘덴서와 신한은행 간의 인연은 비즈니스로 연결된 주거래은행이다. 삼화콘덴서는 신한은행은 물론 KEB하나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매출채권 할인약정을 체결했으나 작년까지 대출잔액이 있던 곳은 신한은행 뿐이다. 대출잔액은 41억원 정도로 이 또한 올해 들어 다 갚았다.
삼화콘덴서와 신한은행 간에 자주 이뤄지는 매출채권 할인은 물건을 팔고 대금을 받아야 할 권리(매출채권)를 가진 기업이 만기 전에 채권을 은행에 넘기고 할인료를 뗀 나머지 돈을 미리 당겨 받을 수 금융기법이다. 수출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결제수단이며 은행 입장에선 결제성 여신, 기업 입장에선 대출로 기재된다.
삼화콘덴서의 사외이사는 과반수가 되지 못하는 만큼 이사회 주요 안건은 사내이사들만의 합의로 처리가 가능하다. 여기에 사외이사 출신마저 거래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이사회 구성 면에서 독립성이 현저히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