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상장법인은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면서 불특정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온다. 그 대가로 상장사 이사회는 건전한 경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받는다. 사외이사 선임과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각종 공시 의무 등이다. 다만 별도기준 총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은 의무강도가 약하며 당국의 감시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회색지대(Gray Zone)'에 존재하는 이들 기업의 이사회를 면밀히 살펴본다.
종합 건자재 기업을 표방하는 대림통상은 자사 임직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꾸준히 영입하고 있다. 창업주 고 이재우 회장의 아내인 고은희 대표이사 회장과 고 이 회장의 딸인 이효진 부사장과 오랜기간 대림통상에서 근무한 손병국 대표이사 전무가 사내이사로 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회사 관계자만으로 이사회를 꾸린 셈이다.
대림통상은 상근감사 역시 과거 대림통상에서 일한 인물을 채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사외이사와 감사 제도를 통한 경영진 견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림통상의 별도기준 자산총계는 1625억원. 자산총계 2조원 미만 상장사는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중은 25%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추가 이사 영입 의무는 없다.
◇ 4년 연속 대림통상 임직원 출신으로 사외이사 1명 유지
대림통상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1명 등 총 4명의 등기이사로 구성돼 있다. 현재 사외이사는 지난 3월 임기 3년의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된 김철호 전 대림통상 도비도스공장 공장장이다. 인천광역시에 자리잡고 있는 도비도스공장은 위생도기와 수전금구, 비데, 주방용품 등을 제조하고 있는 주요 생산 기지 중 한 곳이다.
김철호 사외이사는 도비도스공장에서 일하기 전에도 영등포구 소재 금구공장에서 특수생산부장을 역임하는 등 제품 생산 전선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사외이사의 역할 중 하나가 대주주나 경영진의 독단경영을 견제하는 것임을 고려해 주로 외부애서 전문가를 영입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림통상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현재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3명의 사내이사는 창업주 고 이재우 회장의 아내인 고은희 대표이사 회장과 고 이 회장의 딸인 이효진 부사장을 비롯해 1992년부터 32년째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손병국 대표이사 전무 등이다. 고 회장(19.39%)과 이 부사장(10.29%)은 각각의 지분에 더해 디앤디파트너스(38.9%)를 통해 대림통상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림통상 상근감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을래 감사 역시 과거 대림통상 임직원 출신인 점을 감안하면 이사회 구성원 및 감사직이 전원 오너일가 이거나 전현직 임직원으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이사회와 감사제도를 통한 오너 경영에 대한 견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림통상은 이사회 개최 전 사전에 자료를 제공한다는 이유 등으 사외이사와 상근감사에 대한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 30년 가까이 대림통산 출신 사외이사 꾸준한 선임
대림통상이 자사 임직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고용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김철호 현 사외이사 선임 전 2018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6년여 간 사외이사로 일한 백승훈 전 사외이사의 경우 대림통상에서 상무로 근무한 뒤 리빙스타 대표로 근무한 인물이다. 생활용품과 헤어용품 등을 제조하는 리빙스타는 대림통상의 핵심 자회사다.
백승훈 전 사외이사 활동 전인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을 사외이사로 근무한 이을래 전 사외이사의 경우 상근감사로 일했고, 그 이전 2009년부터 2015년까지 6년을 사외이사로 활약한 장세준 전 사외이사는 대림통상의 계열사였던 조경업체 대림흥산에서 근무했다. 대림흥산은 1999년 삼호에 흡수합병돼 현재의 DL건설로 변모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7년을 근무한 이강태 전 사외이사는 대림산업에 입사해 상무이사로 승진한 인물로 대림통상 근무 이력만 19년에 달한다. 사업보고서 등을 공시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거의 매년 대림통상 이사회에는 대림통상 출신 사외이사가 참여한 셈이다. 해당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과거 외부 인력 영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종연 전 조흥증권 회장을 비롯해 이증석 전 한일투자신탁운용 사장, 한봉수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이화수 전 하나금융지주 글로벌전략총괄 등이 사외이사직을 거쳤다. 하지만 2022년 이화수 전 사외이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한 뒤 올해로 3년째 외부 인사를 영입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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