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상장법인은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하면서 불특정 다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온다. 그 대가로 상장사 이사회는 건전한 경영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의무를 부여받는다. 사외이사 선임과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각종 공시 의무 등이다. 다만 별도기준 총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은 의무강도가 약하며 당국의 감시망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회색지대(Gray Zone)'에 존재하는 이들 기업의 이사회를 면밀히 살펴본다.
삼화콘덴서는 2018년 말부터 이사회 구성원들의 출석률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사외이사 출석률은 수년째 100% 수준이다. 다른 사내이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너인 오영주 회장의 출석률은 14~50%로 절반을 넘은 적이 없다.
계열사 간 사외이사 겹치기도 있었다. 2017~2020년 동안 사외이사로 재직했던 하상봉 전 신한은행 지점장은 계열사 삼화전자에 2017~2023년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 삼화전자 역시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 출신들로 사외이사를 구성했다.
◇출석률 100%, 다만 오영주 회장은 절반 이상 빠져 삼화콘덴서는 3개의 상장사와 14개의 비상장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소그룹 형태를 갖고 있다. 삼화전자와 삼화전기가 상장사, 삼화텍콤과 한국JCC, 삼화기업 등이 비상장사다. 상장사인 삼화전자와 삼화전기는 작년 말 별도기준 총자산이 각각 605억원, 1118억원으로 2조원 미만이라 사외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의 4분의 1만 두고 있다.
더불어 감사위원회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도 의무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감사위원회 대신 상근감사를 두고 있다. 현재 상근감사는 김용철 전 과학기술교육진흥협동조합 본부장이 맡고 있다. 사외이사 추천의 경우 이사회 차원에서 하고 있다.
삼화콘덴서 이사회는 사내이사 6명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 중 한명은 오너인 오영주 회장이다. 그는 다른 상장 계열사인 삼화전자와 삼화전기에도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 오너가 상장 3사에 이사회에 들어가 있는 만큼 삼화그룹은 이사회 경영보다 오너 중심의 경영에 가까운 색채를 띠고 있다.
오너 경영의 색채가 강하지만 이사회 출석률로만 보면 오 회장은 상당히 저조한 축에 속한다. 최근 6년간(2018~2023년) 삼화콘덴서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출석률은 100% 수준이다. 반면 오 회장은 2018년 25%, 2019년 14%, 2020~2022년 50%, 2023년 25%를 기록했다. 연간 이사회가 6~10회 정도 열렸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을 빠졌다.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삼화전자와 삼화전기에서도 출석률이 많아봤자 50%를 넘지 않는다. 이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성실성과 참여도 등에 문제가 될 만한 요인이다.
◇하상봉 전 사외이사, 콘덴서·전자 이사회 겸임 사례도 삼화콘덴서는 사외이사 제도를 1998년에 도입했다. 사외이사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 시점이 외환위기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편이다. 다만 사외이사가 오너 및 경영진을 견제하는 활동을 하는지는 불투명하다. 거래 은행 출신 임직원이면서 한명의 사외이사가 두 개의 계열사를 겸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삼화전자에 2017~2023년 사외이사로 재직했던 하상봉 전 신한카드 지역본부관리단장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삼화콘덴서에서도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현행 상법 및 시행령에서는 상장기업 사외이사의 업무집중도 제고와 이해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상장여부를 가리지 않고 겸직한도(2개 회사만 가능)를 제한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하상봉 전 사외이사 채용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외이사를 이런 식으로 중복 선임하는 것은 사실상 돌려막기나 다름없다는 게 ESG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이사회 투명성을 높이고 오너 등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다.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사외이사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독립성 보장이 중요한데 계열사에 겸임시키는 것은 사외이사가 오너 등에 종속될 여지를 주는 것"이라며 "다만 2020년 이후부터 그런 식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