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CEO 펫 겔싱어가 물러났다. 처음엔 스스로 사임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이사회에서 사임을 종용했다고 한다. 실적과 주가 부진 탓이다. CEO로 재임한 4년 동안 주가는 1/3 토막이 났다. 그런데 퇴임 보너스로 1000만달러, 140억원을 챙겼다는 뒷말도 나온다.
겔싱어 CEO는 인텔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2021년 취임해 IDM2.0 전략을 선언하는 등 인텔의 구원 투수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인텔은 지난 2년 간 250억달러(33조3000억원)를 투자하며 파운드리 산업을 키웠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은 2022년 52억 달러, 2023년엔 70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1만5000명의 감원과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는 등 구조조정까지 했다.
여러 가지 곱씹어볼 포인트가 있다. 우선 반도체 주도권 문제다. 반도체를 처음 개발한 것은 벨연구소지만 반도체로 세상을 지배한 것은 인텔이다.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인텔을 세웠고 고집적도 트랜지스터로 컴퓨터 산업을 만들었다. 무어의 법칙으로 반도체 집적도를 18개월마다 두배씩 올렸고 이는 훗날 삼성전자 황의 법칙으로 발전한다.
시간이 지나며 일본이 반도체 시장을 석권했고 이제는 한국과 대만이 중심에 서 있다. 옛 명성 탓에 인텔을 반도체 왕국이라 부르지만 반도체 산업을 주도할 동력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메모리는 삼성과 SK하이닉스, 비메모리는 대만 TSMC가 세상을 호령하고 있다.
한번 주도권을 놓치면 되돌리기 힘든 게 반도체 산업이다. 투자 타이밍, 한번의 판단 미스가 가져온 격차를 되돌리기 힘들다.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한 일본 도시바는 경영권을 빼앗겼다. 독일의 키몬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더 긴장해야 한다.
또 하나 펫 겔싱어의 사임을 주도한 게 이사회란 점이다. 미국 경제사를 보면 스타 CEO들의 사임 얘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애플 CEO 스티브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의 판매 부진에 창업 회사에서 쫓겨났다. 다시 아이폰을 들고 화려하게 재입성을 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 창업주라도 쫓아내는 게 미국식 자본주의고 이사회 경영이다.
수많은 사례가 있다. GE 제프 이멀트가 그랬고 칼리 피오리나 휴렛 팩커드 회장, 마이클 아이스너 월트디즈니 CEO, 모리스 그린버그 AIG생명 회장 등이 불명예 퇴장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부진한 CEO들은 여지없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강하다. 유럽도 부진의 늪을 걷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있었다. 한국 중국도 휘청이지만 여전히 미국은 세상을 호령한다.
반도체 주도권이 아시아로 옮겨왔지만 엔비디아란 괴물이 등장했다. 포드 GM은 예전만 못하지만 테슬라가 등장해 판을 흔들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등도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 경제의 힘은 무엇일까. 군사력과 막대한 자원, 시대적 흐름 등이 한 원인이다. 하지만 부진한 CEO들을 내쫓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도 한 몫했다.
한국 대기업 중에 이사회의 주도로 CEO가 바뀐 경우가 몇이나 있을까.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심지어 배임 행위까지 해도 오너십은 변하지 않는다. 부도나고 파산한 뒤에야 창업주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CEO들은 옷을 벗었다.
환부를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게 세상 이치다. 부진한 CEO, 실패한 창업주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정치도 헤어질 결심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가 한번 더 발전하려면 한단계 수준 높은 헤어질 결심이 필요하다. 이사회의 각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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