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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움직이는 경영 주체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한국 재계에 끊임없이 던져지는 주제다.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그리고 기업 외 인물들을 뜻하는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업 의사결정의 최고 결정자여야 한다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재계 대다수의 공감대다. 다만 1인 혹은 소수 중심의 재벌 기업집단 문화에 오랫동안 절여진 한국 재계에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는 여전히 막연한 '뜬구름'에 가깝다. THE CFO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기업집단이면서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지향하고 있는 SK의 이사회 경영과 거버넌스 시스템을 살펴보고 그들의 고민과 해결방안을 들어 봤다.
여러 기업들의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살펴보면 많은 내용 중 '사외이사에 대한 개별 평가 실시 여부'에 'O, X'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 'X'라고 표기한 기업들의 경우 주로 보이는 미시행에 대한 사유가 '사외이사에 대한 개별 평가가 이뤄지면 이사회의 독립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를 두고 사외이사에 대한 개별 평가를 할 정도로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는 회사이거나, 이사 평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번거로운 행위로 생각하는 기업들이 내세우는 논리라는 지적도 있다. 한 마디로 기업들의 '핑계'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SK그룹은 사외이사에 대한 개별 평가는 물론이고 이사회 전체 평가에 '진심'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되는 SK그룹 계열사들의 보고서를 보면 공통적으로 특이한 점이 있다. 회사의 이사회를 평가해 점수를 기재해 놓은 것이다. 예컨대 지주회사 SK의 경우 2023년 이사회 활동 평가 결과(자기 평가)로 종합 평점 5점 만점에 4.56점을 기재해 놓았다.
이사회를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산출해 공시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유하는 문화는 아직 국내 상장사들 사이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자체적으로 이사회의 활동을 돌아보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의미를 갖는 '이사회 평가'는 SK그룹의 '이사회 중심 경영'의 일환이다.
SK 외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들도 이사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이사회 구성과 역할, 책임, 운영에 대한 자기 평가 결과와 기업가치(주가) 및 지배구조에 대한 대외 평가를 50대 50으로 반영해 종합 평가를 실시한다. 2023년의 경우 이사회 활동 자기평가와 대외 지배구조 평가로 각각 45점, 25점을 받았다. 기업가치 제고 평가의 경우 0점을 받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작년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CEO에 대한 평가 보상 및 리더십 승계 체계 등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하고자 이사회 평가를 실시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작년 이사회 평가 결과 4.6점을 받았다.
이런 이사회 평가 역시 그룹 거버넌스위원회에서 신설한 아이디어다. 채희석 SK SUPEX추구협의회 Govrenance지원담당은 SK그룹의 이사회 평가가 총 세 단계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채 담당에 따르면 SK그룹의 이사회 평가 중 첫 번째 단계는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평가하는 '자체평가 형태'다. 각 사외이사들이 평가 기간 동안 이사회 활동과 부족한 점을 직접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2단계는 이사회와 함께 위원회까지 평가 대상으로 포함한다.
마지막 3단계는 이사회와 위원회를 포함해 '개별 이사'들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또 평가 주체에 주주나 외부 기관 등 이해관계자도 추가된다.
SK그룹의 이사회 평가 시스템은 각 사가 보유하고 있는 '이사회 규정'에 기인하기도 한다. 각 사의 이사회 규정에는 '이사회 평가'라는 별도 카테고리가 있다. SK주식회사의 경우 이사회 규정 제20조 [이사회 활동에 대한 평가] 1항에 '이사회는 매년 이사회 활동에 대한 자체 평가를 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2항의 내용은 '회사는 외부 기관 등에 이사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의뢰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이사회에 제출하여야 한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