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들은 집단사고와 에코체임버, 그리고 터널비전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조직 수뇌부에서 간혹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물어본 질문에 금융권 관계자의 답변이다. 기업 사외이사를 경험해본 이 관계자는 이사회 안팎을 겪어보며 조직의 엇나간 판단 사례들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집단사고(Group think)는 응집력 있는 단체의 조직원들이 갈등을 최소화하고 의견의 일치를 유도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에코체임버(Echo Chamber)는 텅 빈 강당에 메아리 울리듯 성향이나 신념,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본인들에게 맞는 정보만 수용하고 다른 정보나 시각은 차단하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비전(Tunnel vision)이 생긴다. 시장과 주주가 자신들을 어떻게 보는지 감 잡지 못하고 그들만의 사고 안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상당한 외부 반발에 부딪히자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의아해한다.
한창 경영권 다툼 중인 A사는 자기주식을 계속 사들이며 주가를 높이다가 느닷없이 유상증자 공시를 냈다. 주가가 폭락을 하고 여론의 반발이 거센데다 금융당국까지 제동을 걸자 결국 철회했지만 위반 제재금에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이 판국에 유증을 했다가는 시장 반응이 안 좋을 거라는 점은 증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오너가 상황이 몰리자 급해진 건지, 이를 말릴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으나 정상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연해 보인다.
B사의 경우 인공지능(AI) 시장에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았지만 갑자기 2차전지 관련 업체를 인수하려 하자 주주들이 크게 반발했다. 주가도 폭락하면서 잘 나가던 기업의 가치를 스스로 까먹었다. 증권사들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사업 다각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소통 없이, 느닷없이 이뤄진 결정이라 황당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걸 보면 회사 수뇌부와 바깥의 주주 간에는 큰 시각차가 있는 게 분명하다.
이는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된 배경이기도 하다. 회사 밖에 있는 이들의 전문적인 식견은 물론 외부의 시각을 경영진에 제공, 이사회가 고이지 않고 균형 있게 운영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1996년 현대그룹이 도입한 이 제도가 아직은 완전히 뿌리 내리진 못한 듯 하다.
해법은 결국 투명성과 개방성이다. 이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구성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선출되는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등을 오픈하고 시장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외부기관의 평가까지 받으면 금상첨화다. 무엇보다도 밀실결정을 지양하고 고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 기업 이사회든, 정부 수뇌부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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