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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의사의 '이사회 경영'

최명용 THE CFO 부장 겸 부국장  2024-08-16 07:45:20
'이사회 경영'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사회 멤버 구성을 강화하고 이사회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SK그룹을 필두로 롯데 태광 한국앤컴퍼니 등 대기업들은 이사회 경영을 선제적으로 선언했고 이사회 구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사회 경영'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상법상 회사의 주요 업무 집행은 이사회가 결의하도록 돼 있다. 이사회는 최고 의결 기구이고 대표이사에 대한 감독 기능도 갖는다. 이사회 경영을 선언하든 안하든, 회사의 의사결정은 이사회를 통해 이뤄지고 제대로 실행되는 지 감독하는 것도 이사회다.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더 많이 통용된 것은 '오너경영'이다. 오너 경영이라고 해서 이사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오너를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되고 이사회는 거수기 역할만 했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고도 성장기엔 필요한 거버넌스 형태였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 시점에 이사회 경영이 재계의 키워드로 등장하는 것은 오너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폐단을 많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오너의 이익에 치우친 의사 결정에 대한 반성이 이사회 경영 선언에 담겨 있다.

하지만 '구시대적'인 이사회를 유지하는 곳이 의외로 많다. 대기업들은 규제에 따라, 또 자의적으로 이사회의 견제기능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미들캡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다르다.

상법상 이사회는 3인 이상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지만 자산 규모가 2조원 넘는 상장회사는 사외이사를 3인 이상, 전체 이사회에서 과반수 이상을 두도록 하고 있다. 역으로 자산 규모가 2조원 안되는 상장사들은 사내이사 3인+사외이사 1인으로 이사진을 구성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오너 일가 3인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1인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부지기수다. 더욱이 사외이사를 오너와 특수 관계에 있거나 회사와 거래 관계에 있는 인물로 뽑아 놓기도 한다.

정형외과 의사, 미술치료사가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고 감사 역할을 한다. 주거래은행에서 대출을 담당했던 인사가 돌고 돌아 사외이사로 들어오면 감시 기능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사회 참석률까지 낮으면 경영 활동에 대한 관리 감독은 소홀할 수 밖에 없다. 대표이사의 횡령사건이 벌어지고 기업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 발생해도 이사회는 견제를 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하지 않는다.

이사회가 제대로 구성이 돼 있어도 일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기 십상인데 오너 일가가 좌지우지하는 이사회라면 문제의 소지가 더 커진다.

무엇이 더 효율적인 거버넌스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오너 중심 경영이 더 효율적이란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오너 견제 역할은 이사회가 맡아야 한다. 그에 걸맞는 이사회 구성과 역할이 필요하다. 최소한 상장사는 좀더 엄격한 기준의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다. 정형외과 의사나 미술치료사가 맡는 사외이사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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