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회장 잔혹사' 이야기를 꺼낼 시기가 왔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임기는 약 1년이 남았지만 정권 교체와 맞물린 전임 회장들의 중도 퇴임 역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이 경제계 신년회에 이례적으로 불참하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포스코 회장직의 연임 행태를 비판하는 등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 최 회장은 본인의 남은 임기 1년을 함께할 사장단 인사를 파격 단행했다. 차기 회장 후보로 지목됐던 인물들 중 누군가는 자리를 지켰고, 누군가는 자리를 옮겼다. 아예 짐을 싼 사람도 있다. 최 회장과 포스코의 의중은 무엇일까. 더벨과 THE CFO가 분석했다.
어느 기업에서든 인사의 대원칙은 '신상필벌'이다. 성과를 낸 임직원에겐 승진과 영전이라는 보상을 주고, 성과를 내지 못한 임직원에겐 강등과 면직이라는 처벌을 내린다. 인사철마다 등장하는 세대교체라는 키워드도 실은 필벌했다는 의미다. 뚜렷하게 성과를 낸 임직원을 그저 나이와 경력만을 이유로 교체할 만큼 여유로운 기업은 없다.
신상필벌 측면에서 봤을 때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넘게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하며 적잖은 성과를 낸 전중선 사장을 퇴임시키고, 자회사 중에서 규모가 크지 않은 포스코에너지에서 CFO와 대표이사를 약 5년간 지낸 정기섭 사장을 후임으로 앉힌 점은 그 배경과 의도를 궁금하게 만든다.
'굴뚝 산업'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져서 그렇지 포스코홀딩스에서 CFO의 위상은 다른 재계 그룹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이번에 퇴임하는 전 사장을 포함해 역대 CFO들은 회장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지냈고 생산과 연구개발을 제외한 백오피스 전반을 책임졌다. 그만큼 권한이 많고 역할 범위가 넓었다.
이러한 자리에 최 회장은 본인과 4년 넘게 호흡을 맞추며 최대 프로젝트였던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전 사장을 물러나게 했다. 대신 그 자리에 자회사 대표이사이자 역대 CFO들과 달리 '대우그룹 출신'인 정 사장을 앉혔다.
정 사장이 CFO 역할을 하는 기획지원부문장으로 2년, 그리고 대표이사로 3년 재직한 포스코에너지는 그룹에서 현재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회사들과 비교해 자산과 매출 면에서 비할 바가 못된다. 일례로 지난해 3분기 누계 연결기준으로 포스코에너지 자산과 매출은 각각 4조7420억원, 2조5566억원이다. 이는 같은 시기 포스코 자산과 매출의 각각 10분의 1 수준이다.
그렇다고 포스코에너지가 포스코케미칼처럼 중장기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육성해온 곳도 아니었다. 단적으로 포스코에너지는 올해 1월1일부로 그룹에서 포스코에 이어 두 번째로 자산과 매출 규모가 큰 포스코인터내셔널에 흡수합병돼 소멸됐다. 계속해서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할 정도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포스코에너지 매출을 책임진 건 민간발전 사업이다. 사업 다각화를 도모했으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 사장이 CFO와 대표이사로 있는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매출 기준 90%가 넘던 발전 사업 의존도를 지난해 3분기 누계 연결기준으로 70% 초반대로 낮췄지만, 이는 2019년 포스코홀딩스가 LNG터미널 사업을 양도한 덕분이었다.
정 사장이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끈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출과 자산 모두 매년 증가하며 성장성을 보였다. 2020년 연결기준으로 1조5166억원이었던 매출은 2022년 약 3조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산도 3조9885억원에서 4조7420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 2013~2014년 때와 비교하면 성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포스코홀딩스에서 CFO가 기획과 전략 업무(신사업 발굴 및 추진)도 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 사장이 이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판단한 배경을 궁금하게 만든다. 더욱이 최 회장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목적 중 하나로 친환경 소재로의 사업 확대를 꼽은 바 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이와 관련해 뚜렷한 경험이나 실적이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는다.
더불어 최 회장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평가절하된 주가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는데, 포스코에너지는 비상장사로 주가 관리 필요성이 없는 곳이었다. 포스코홀딩스의 사실상 완전 자회사다. 포스코에너지 C레벨 임원들에게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중요한 소통 대상은 투자자보다는 모회사인 포스코홀딩스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정 사장은 전임인 전 사장보다도 오히려 1살이 많다. C레벨 임원을 교체할 때 흔히들 이야기하는 '세대교체'라고도 보긴 부족하다.
지난달 포스코홀딩스는 정 사장을 선임하며 "그룹 내 사업현장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구조조정 경험이 풍부해 그룹 차원의 위기관리와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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