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지주사에서 전무와 부사장 등 고위 직급까지 오른 임원은 크게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하나는 사장으로 승진하며 지주사 대표이사(CEO)를 맡거나, 다른 하나는 자회사로 적을 옮겨 대표이사를 맡는 길이다.
이 가운데 자회사 대표이사로 가면 회사 안팎에서는 해당 임원이 거기에서 오랜 조직 생활의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판단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자리로 생각하는 셈이다. 하지만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두 번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인사로 자회사 대표이사가 임원의 마지막 경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지난달 말 경영전략팀장에 선임한 정기섭 사장은 직전까지 자회사인 포스코에너지(올해 1월1일부로 포스코인터내셔널에 흡수합병)에서 대표이사·사장으로 3년여간 재직했다. 경영전략팀장은 현재 포스코홀딩스에서 CFO 역할을 하는 자리다.
정 사장 전임자인 전중선 사장도 2018년 포스코홀딩스 가치경영센터장에 선임되기 직전에 자회사인 포스코강판의 대표이사·사장이었다. 당시 포스코홀딩스에서 CFO 역할을 하는 직책은 가치경영센터장이었다. 몇 번의 이름을 바꾼 뒤 지금의 경영전략팀장으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전 사장과 정 사장 이전에도 CFO 선임 직전 직책이 자회사 임원인 인물은 있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재무투자본부장으로 CFO 역할을 한 이영훈 부사장이다. 그는 직전에 포스코건설 경영기획본부장이었다. 하지만 전 사장과 정 사장처럼 자회사 대표이사는 아니었다.
역대 다른 CFO들은 모두 포스코홀딩스에서 승진해 CFO 자리에 앉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포스코홀딩스가 민영화 작업을 추진하고 완료한 시기에 CFO 역할을 한 김용운 부사장도 이전 직책이 포스코홀딩스 마케팅본부장이었다.
김 부사장에 뒤를 이은 최광웅 부사장도 포스코홀딩스 경영기획실과 경영지원실 담당 임원이었다. 2005년 짧게 CFO 역할을 한 윤석만 부사장의 직전 직책도 포스코홀딩스 마케팅 부문과 홍보실, 비서실 등을 관장하는 자리였다.
이후 CFO 역할을 한 이동희 사장과 최종태 사장, 박기홍 사장도 전중선 사장과 정기섭 사장처럼 자회사 대표이사가 아닌 포스코홀딩스 내 다른 직책에서 CFO 역할을 하는 자리로 선임된 경우다. 첫 CFO 출신 회장인 최정우 회장도 2016년 CFO 역할을 하는 가치경영센터장에 선임되기 직전 직책이 포스코홀딩스 가치경영실장이었다.
자회사 대표이사가 지주사 내 전무와 부사장 이상 임원들의 마지막 자리가 아니라는 점은 최 회장의 사례로도 입증된다. 최 회장은 2018년 2월 포스코홀딩스 가치경영센터장에서 포스코켐텍(현 포스코케미칼) 대표이사·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그해 7월 포스코홀딩스 대표이사·회장에 승진 선임됐다.
최 회장과 최 회장이 선택한 경영 파트너인 전 사장과 정 사장 모두 자회사 대표이사에서 경력을 마무리하지 않고 지주사 회장과 CFO로 옮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최 회장 시대 들어 만들어진 새로운 인사 규칙 중 하나이다. 또한 자회사 대표이사에 선임된 임원들에게 다른 측면에서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는 사례들로도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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