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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매수 결정한 영풍 이사회 '사내이사' 부재

구성원 5인 중 '사내이사 2인' 공백, 사외이사 3인만으로 '경영 중대사항' 판단

박동우 기자  2024-09-19 14:52:27

편집자주

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영풍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 주식을 겨냥한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지분율이 달라지고 소유 자산이 변동하는 중요 사안이지만 공개매수 진행 과정을 복기하면 '의사결정 최고기구' 이사회 존재감은 희미했다. 대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장형진 고문이 더 부각됐다.

영풍 이사회가 전면에 드러나지 못한 건 영풍 이사회 구성원 5인 가운데 일부가 부재 중인 상황과 맞물렸다. 사내이사 2인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 구속된 여파로 공백이 발생했다. 남은 사외이사 3인만으로 '경영 중대사항'을 판단해 의사결정을 내렸는데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추진 과정이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민·배상윤' 대표 구속, 사내이사 교체 없어

최근 MBK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이 고려아연 주식을 겨냥한 공개매수에 돌입했다. 주당 66만원에 1조9998억원을 들여 지분 14.61%(302만4881주)를 오는 10월 4일까지 사들이는 계획이 골자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차입금 등 1조9932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전체 주식의 14.56%(301만4881주)를 확보하고 영풍은 66억원으로 0.05%(1만주)를 매입하는데 방점을 찍었다.

영풍이 공개매수 주축이지만 지금까지 전개 과정을 살피면 '법인' 영풍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장형진 고문 '개인'의 입장이 더 부각된 모양새다. 이달 12일 보도자료에 "지난 75년간 2세까지 이어져 온 두 가문 공동경영의 시대가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장 고문 입장이 기술된 부분이 방증한다.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등을 비롯한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도 장 고문이 포함됐다.

고려아연 지분 구성을 살피면 장씨 가문을 위시한 영풍 측이 33.13%, 최씨 일가를 포함한 고려아연 측이 33.99%로 집계된다.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영풍이 보유한 지분은 전체의 25.4%(525만8797주)다. 반면 장 고문이 소유한 주식은 3.49%(72만1798주)에 불과하다. 주식 수량만 놓고 보면 영풍이 장 고문보다 7배 넘게 많이 보유 중이다.

공개매수 초반부터 장 고문이 전면에 등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최고 의사결정 조직인 이사회 구성원에 공백이 발생한 국면과도 맞닿아 있다. 영풍 이사회는 사내이사 2인, 사외이사 3인 등 5명이 포진한 기구다. 사업을 총괄하는 박영민 대표와 석포제련소장을 맡은 배상윤 대표가 나란히 사내이사로 등기됐다. 특히 의사결정 절차 간소화와 업무 집행 효율성을 염두에 두고 박 대표가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다.


박 대표와 배 소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받아 지난달 말에 구속됐다. 제련소에서 일어난 근로자 사망 사고 3건을 둘러싼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은 대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수습하는 과정에서 모바일 메신저 대화 기록을 지우는 등 증거를 인멸한 점 역시 영장 발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내이사 2인이 동시에 구속되자 영풍은 4일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쇄신하겠다"며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직무대행 임원을 선임하는 등 비상 경영태세를 갖추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다만 법인등기사항증명서 등 최신 자료를 살펴본 결과 이달 19일 현재 사내이사를 새로 선임한 내역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자문' 사외이사, 방송국 PD '34년' 경력

법 위반 이슈로 구성원 공백에 직면한 영풍 이사회가 사내이사를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정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영풍은 정관 제30조에 "이사가 결원됐을 때라도 재임 임원이 법정원수 이상이 되고 업무 집행상 지장이 없을 때는 보결 선임을 다음 정기주주총회 시까지 연기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현행 상법 제383조에서는 이사를 최소 '3명' 두도록 규정했다.


자연스레 영풍 이사회가 사외이사 3인 체제로 운영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현재 영풍 사외이사진에는 회계법인 청 대표를 지낸 박병욱 회계사, 박정옥 사회복지법인 설원복지재단 이사, 최창원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초빙교수가 포진해 있다. 박병욱 대표에게는 회계 자문 역할이 부여됐고 박정옥 이사는 경영, 최창원 교수는 행정 분야 자문 업무를 맡았다.

일부 사외이사의 경력을 살피면 영풍이 강조하는 전문분야와 괴리된 양상이다. 박정옥 이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박 이사는 1984년 이래 2018년까지 한국방송(KBS)에서 프로듀서(PD)로 활약하면서 △KBS스페셜 △TV미술관 △문화탐험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한 인물이다. 이후 KBS교향악단 사장직을 맡아 2021년까지 직무를 수행했다. 영풍은 박 이사를 발탁한 배경으로 경영 전문성을 거론했다.


고려아연은 영풍 이사회 의사결정 적절성과 공개매수 추진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업무상 배임 등 형사고발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18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대표이사 2명이 동시에 구속된 영풍 이사회에 사외이사 3명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이뤄졌다"며 "영풍의 사외이사들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영풍 관계자는 "신규 사내이사 선임과 관련한 계획은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며 "사내이사 2인이 부재 중이라 하더라도 상법상 법정원수 충족 등을 감안하면 이사회 개최 등의 절차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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