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티메프(티몬·위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 전반의 재무건전성을 살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큐텐그룹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가 잇달아 경영난에 처한 근간에는 자금 여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THE CFO는 종합 온라인몰, 딜리버리, 패션, 여행, 중고거래 분야에 속한 주요 이커머스 기업 20개사의 유동성 상황을 진단한다.
컬리는 '신선식품 새벽배송'으로 시장 입지를 다진 뒤 화장품, 가구 등으로 판매 외연을 넓힌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이다. 2016년 창업 이래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1조원 넘는 자금을 유치하며 성장 기틀을 다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자금 확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영진 화두로 '내부 현금창출 능력 확보'가 대두되면서 자금을 지속적으로 유입할 복안으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주목받고 있다. EBITDA를 증대하면서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축적할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다. 여세를 몰아 정산주기를 조정하면서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양전환'하는 등 자금 제어 노력이 열매를 맺고 있다.
◇유동비율, 2년째 100% 밑돌아…단기차입 대비 여유자금 3배 올 1분기 말 연결기준으로 컬리의 유동부채는 3804억원으로 유동자산 3314억원과 견줘 14.8%(490억원) 많다. 지난해 3월 말과 비교하면 2780억원이던 유동부채는 1년새 36.8%(1024억원) 불어났다. 유동자산 증가율 31.9%(802억원)를 웃도는 수치다.
단기채무에 대한 지급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유동비율은 △2023년 3월 말 90.4% △2023년 말 60.0% △2024년 3월 말 87.1% 등으로 2년째 100%를 밑돌았다. 유동자산을 현금화해도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채무에 대응키 어렵다는 의미다.
단기성차입금 대비 유동성 규모 역시 약화된 양상이다. 2020년 말 여유자금은 1492억원으로 단기성차입 잔액 297억원의 5배 수준이었다. 이후 배율은 △2021년 말 3.82배 △2023년 말 3.01배 등으로 축소됐다. 올 1분기 말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더한 금액은 2233억원으로 만기가 1년 내 도래하는 차입금 615억원의 3.63배로 나타났다.
컬리가 보유한 유동자산 3314억원의 구성을 살피면 단연 비중이 높은 항목이 현금성자산이다. 1996억원으로 전체의 60.2%를 차지한다. 재고자산이 19.6%(649억원)로 뒤를 이었다. 결제대행사(PG) 등으로부터 아직 수취하지 못한 미수금은 9.4%(312억원), 매출채권은 0.9%(31억원)로 집계됐다.
유동부채 3804억원 가운데 금액이 가장 많은 항목은 매입채무로 2188억원(57.5%)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 말 1478억원과 비교하면 1년새 48%(710억원) 늘었다. 미지급금은 17.6%(671억원), 리스부채는 12.1%(462억원)의 비중을 시현했다. 작년 말 1270억원이던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부채는 '제로(0)'가 됐다. 투자금을 유치하면서 발행했던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모두 보통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대금지급기한 늦춰 매입채무↑…700억 현금유입 인식 컬리가 거액을 조달하면서 단기 지급능력을 끌어올릴 핵심 방안은 '기업공개(IPO)'지만 관철하려면 많은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2022년 8월에 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경영진은 2023년 1월에 IPO를 무기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투자를 유치하면서 4조원으로 평가된 밸류(기업가치)가 경기 후퇴 여파로 낮아진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같은 해 5월에 앵커에쿼티파트너스와 아스펙스캐피탈 등 기존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1200억원을 확보할 당시 밸류를 2조9000억원으로 책정한 만큼 기업가치 상향이 IPO 선결 과제로 대두됐다.
컬리 경영진은 유동성 관리 복안으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주목하는 모양새다. 올 3월에 2023년 연간 실적 기업설명회(IR) 자료에서 "2023년 말 월간 조정 EBITDA가 흑자 전환하면서 자체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확보했다"고 기술한 대목이 방증한다. 증자를 활용해 2016년 창업 이래 누적 투자금을 1조원 넘게 확보했지만 창업자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 희석 등을 감안하면 외부자금 유치 부담이 큰 점도 영향을 끼쳤다.
올 1분기에 컬리는 EBITDA 195억원을 실현하면서 창사 이래 첫 흑자를 달성했다. 수익성을 좌우하는 각종 비용을 감축한 '효율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판매 품목에 대한 할인을 축소해 상품 소싱 마진을 보강했다. 서울 송파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에 자리잡은 물류센터를 가동하며 직접운영비를 줄인 대목도 주효했다.
영업활동에 관련된 자산·부채(운전자본) 변동을 조절하며 내부현금 유입기반을 다지는데도 역점을 기울였다. 대표적 사례가 '정산주기 조정'이다. 올해부터 컬리는 물류센터에 입고된 상품을 둘러싼 대금 정산주기를 세분화했다. 기존에는 1개월간 집계된 상품 대금을 다음달 말에 거래처로 지급했다.
제도 개편 후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매달 1~10일에 납품된 사례는 종전처럼 다음달 말에 지급하고 11~20일에 입고된 제품 대금은 2개월이 경과한 후 10일에 지급하는 방침을 내렸다. 21일부터 말일까지 납품된 사안에 대해서는 두달 후 20일에 대금을 치르는 내용이 골자다.
정산주기를 연장한 조치는 현금흐름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운전자본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매입채무 증가에 따른 현금 유입분을 올 1분기 693억원 인식했다. 영업활동 관련 자산·부채 변동에 따른 현금 유입액 역시 637억원을 시현했다. 지난해 1~3월 220억원 유출과 대조적인 양상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2023년 1분기 351억원 유출에서 올해 같은 기간 801억원 유입으로 반전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