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티메프(티몬·위메프)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 전반의 재무건전성을 살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큐텐그룹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가 잇달아 경영난에 처한 근간에는 자금 여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THE CFO는 종합 온라인몰, 딜리버리, 패션, 여행, 중고거래 분야에 속한 주요 이커머스 기업 20개사의 유동성 상황을 진단한다.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의 주범인 큐텐그룹과 티메프와 그리고 연결기업 인터파크커머스의 부실화는 또 다른 나비효과를 예고했다. 앞서 큐텐그룹에 인터파크커머스를 매각했고 미국 증시 입성을 노리는 야놀자가 이 사태의 '영향권'에 있다.
야놀자 측도 티메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매각대금은 계획대로 회수 중이고 담보도 있다는 입장과 함께 큐텐그룹과의 '손절'도 선언했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이유야 어찌됐든 기업공개(IPO)로 나가려면 이번 미지급금 사태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 다만 시장에서 말하는 최대 10조원의 밸류를 책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큐텐그룹 연쇄 몰락 몰랐던 야놀자의 '억울한 거래구조' 야놀자는 2023년 4월 쇼핑과 도서사업을 분할한 인터파크커머스 지분 전량을 약 1870억원에 큐텐에 매각했다. 그러나 1년이 넘은 지금도 매각대금은 정산되지 않았다. 이는 매각 과정에서 야놀자 측은 큐텐 그룹이 제시한 주식 담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전체 담보 설정 금액이 잔금의 135%에 달했고 큐텐그룹이 큐익스프레스 외에 '인터파크커머스' 주식을 다시 담보로 건 게 눈길을 끈다. 당초 인터파크커머스를 판 곳은 야놀자였다. 인터파크커머스의 재무 상황은 야놀자 측이 가장 잘 안다는 뜻이다. '신뢰와 매물 보증' 측면에서라도 큐텐그룹의 제안을 구태여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작년 매각 당시 야놀자의 종속법인이자 앞서 큐텐그룹 지분에 대한 담보권자 인터파크트리플은 이를 통해 2023년 약 1520억원의 매각이익을 인식했다. 앞서 확보한 계약금 명목으로 받은 선급금은 190억원가량이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 매각이익에 담보로 받은 지분 가치를 반영해 인식했단 뜻이다.
상황을 종합하면 야놀자 측도 거래 상대방인 큐텐그룹이 이 지경으로 망가질 것으로 생각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받을만큼 큐텐그룹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본인들이 판매한 '인터파크커머스'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뢰했기 때문이다. 2022년 인터파크커머스 지분 전량을 570억원 규모의 '매각예정자산'으로 분류한 것도 확신에 대한 근거다.
◇눈물을 머금은 '정산의 시간' 불가피, 밸류 조정도 필연적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게 큐텐그룹에 합류한 인터파크커머스의 지분가치는 순식간에 증발했다. 2022년말 기준 약 660억원의 유동성을 갖고 있던 인터파크커머스는 큐텐그룹이 인수한 지 불과 8개월 만인 2023년말 현금성자산 15억원, 부실채권 1000억원을 보유한 기업으로 뒤바뀌었다. 올해부터의 상황은 알 수도 없다.
여기까지만 짚더라도 앞서 야놀자 측이 인터파크커머스 매각 전 나름대로 책정한 자산가치를 상실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이는 야놀자 측이 큐텐그룹으로부터 담보로 받은 인터파크커머스의 담보 주식 또한 부실자산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높단 것을 의미다.
물론 야놀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사업적으로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야놀자 관계자는 "앞서 인터파크커머스를 둔 큐텐그룹과의 거래의 경우 계약에 따라 대금 지급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큐텐 측 엔 인터파크 브랜드 사용을 즉시 중단할 것을 요청했으며 이밖에 지나친 확대해석은 지양해달라"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미 본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야놀자 측은 이 사태의 유탄을 피할 순 없는 상황이다. 야놀자 및 인터파크트리플이 인터파크커머스를 팔고난 뒤 약 1500억원의 매각이익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공개된 정황을 종합하면 야놀자 측은 앞서 인터파크커머스 매각 잔금을 모두 정산받지 못한 상황에서 자회사 인터파크트리플을 통해 매각이익을 인식했다. 이는 매각이익에 '주식 담보'에 대한 가치를 많든 적든 반영했단 의미다. 그러나 이미 인터파크커머스를 포함한 큐텐그룹사는 판매대금 미정산이 시작됐고 곳곳에서 부실 징후가 튀어나온다.
야놀자는 앞서 담보로 받은 자산에 대한 명확한 손상 징후에 대응해야 한다. 자회사 인터파크트리플의 수익성 '오버퍼폼'은 IPO 국면에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중요한 트리거였는데 이게 무위로 돌아갈 상황이다. 인터파크트리플은 앞서 매각이익 반영으로 2023년 연결 기준 당기순익을 11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2022년 221억원의 5배 가량이다.
담보권을 행사해 인터파크커머스 경영권을 확보한다 쳐도 효용은 커 보이지 않는다. 현재 인터파크커머스의 유동성은 말랐으며 대규모 부실채권을 끌어안은 것으로 확인된다. 담보로 받은 인터파크커머스 지분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라 쳐도 역시 부실화한 사업법인이 회귀하는 것 외엔 의미가 크지 않다.
시장에서 야놀자의 기업가치를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점쳤던 것도 사실 인터파크커머스를 약 2000억원에 매각한 빅딜에 힘입었다. 이 논리가 무너지면 전반적인 기업가치에 대한 재평가의 잣대 위에 다시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