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은 쉽지만 어렵다. 스스로 원칙을 정립해 실천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각자 선택으로 갈린다. 기업에서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는 과업 역시 오롯이 회사의 판단에 달렸다.
"상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니콘 기업 이사회 구성을 취재하면서 자주 들은 말이다. 증시에 입성하지 않았으니 등기임원을 충원하거나 사외이사를 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가닿는다. 밸류 1조원을 넘겼을 만큼 덩치는 커졌지만 '비상장'이라 외부 규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외식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이사회 총원을 상법에서 규정한 최소 요건에 맞춰 3인으로 구성했다. 피터얀 반데피트 임시대표가 '나홀로' 사내이사를 맡았다. 크리스티안 요하네스 워커와 안드레아스 크라우제는 기타비상무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이사진 전원이 독일 모회사 딜리버리히어로 임원이다. 4000억원대 배당을 안겨주는 '알짜' 회사인 만큼 모기업 의사를 온전히 투영하는 이사회 구성이다. 의결 신속성을 도모하는 이점을 노리지만 다른 이해관계자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한다. 핵심 수익원인 배달 중개 수수료를 인상하는 의사결정을 둘러싼 반발 여진이 몇 달째 이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유니콘 기업이 우아한형제들의 길을 따르는 건 아니다. 숙박·여가 플랫폼 운영사 야놀자는 일찌감치 선진 이사회를 설계했다. 언젠가 기업공개(IPO)가 이뤄질 상황을 염두에 둔 행보이기도 하다. 이사진이 모두 11명인데 회계, 세무, 정보기술(IT), 거시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식견을 지닌 인물 4인방이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객관적 시각을 갖춘 외부 인사를 영입해 폭넓은 의견 수렴을 추구하는 취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감사, 내부거래, 지배구조, 보상 등 4개 위원회를 구축하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사회 운영과 업무 분담 체계를 한층 정교하게 다듬었다.
타율보다 자율이 더 어렵다. 실행에 옮기려면 변화 의지를 품어야 하고 방향을 택하는데 도움되는 안내서도 살펴야 한다. 유니콘 기업이 속속 등장한 현실을 반영해 시장 평가 밸류나 자산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비상장사에 특화된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정립하는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율과 실천의 간극을 해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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