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올해 자본시장과 투자 분야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새롭게 선임했다. 기존 이사회에 해당 분야 전문가가 없던 점을 고려하면 관련 부문 역량을 추가했다. 그간 호실적으로 많은 '실탄'을 갖고 있는 만큼 새로운 사외이사와 함께 어떤 기업가치 전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단 기아는 BSM(이사회 역량 현황표)을 공개하지 않는다.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5위인 GM은 BSM을 공개한다. 9개의 역량 항목으로 13명의 이사가 각각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보여준다. 주목되는 점은 모든 이사가 '리스크 관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GM은 지난해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에 따른 결과로 임금 인상과 대선 결과에 따른 정책 변화 등의 대응 과제를 안고 있다.
◇기아, 최근 '공정거래 전문가' 퇴임한 사외이사 자리에 '전략투자 전문가' 선임 기아는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총에서 이인경 MBK파트너스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이 부사장은 MBK파트너스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IR 부문 헤드를 담당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서 세무 자문 업무를 한 경험이 있고 아웃도어 의류 업체인 '네파'에서 감사로 활동했다.
기아는 정기 주총에 앞서 공시한 공고문에서 이 부사장에 대해 "자본시장과 전략 투자 분야 전문가이고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사를 역임해 이사회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며 "이사회 내 전략투자 전문가로서 당사의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전문성과 투명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존 기아 이사회에 자본시장과 전략투자 전문가가 없던 점을 고려하면, 이 부사장 선임으로 새로운 역량을 추가한 것이다. 현재 기아는 어느 때보다 큰 규모의 주주환원과 인수합병(M&A), 지분투자를 할 수 있는 실탄이 충분한 상황이다.
지난해 말 연결기준 기아의 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약 16조6500억원으로 전체 차입금과 사채를 모두 갚아도 약 14조원 가까이 남는다. 그간의 호실적으로 지난 3년간 잉여현금흐름(영업활동현금흐름-유·무형자산 취득액)으로 매년 5조원 넘는 현금이 유입됐다. 올해도 지난해 못지 않은 실적이 기대되는 만큼 조 단위 현금 유입이 예상된다. 이 부사장 선임이 시의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단 이와 별개로 기아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BSM을 공개하지 않는다. 매년 발표하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이사별 전문 분야만 밝히고 있다. 기아 사내이사는 4명, 사외이사는 5명이다. 사내이사 4명의 전문 분야는 △그룹 총괄(정의선 회장) △당사 총괄(송호성 사장) △국내생산 담당(최준영 부사장) △재경(주우정 부사장)이다.
이번에 선임된 이 부사장을 제외한 사외이사 4명의 전문 분야는 △미래 거버넌스(조화순 연세대 교수) △경영(전찬혁 세스코 회장) △회계(신재용 서울대 교수) △기계공학(신현정 카이스트 교수)이다. 여기에 올해 발표될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이 부사장의 '자본시장과 전략투자'가 추가될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이 부사장에 배턴을 넘겨준 사외이사는 한철수 법무법인 화우 고문이다. 한 고문은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으로 전문 분야는 공정거래였다. 그가 퇴임하면서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적 판단과 제언은 다른 이사들의 몫이 됐다.
◇GM 이사회, 기아에 없는 '마케팅·사이버 보안 전문가' 보유…연차총회 전 BSM 공개 GM은 기아와 달리 BSM을 공개한다(현대자동차도 BSM을 공개하지 않음). 여느 미국 상장사처럼 5~6월에 개최하는 연차총회에 앞서 공시하는 'Proxy Statement(위임장 성명서)'에서 밝힌다. 연차총회 참석에 앞서 주주들이 자신들을 대리해 경영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파악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지난해 GM 위임장 성명서에 따르면 이사회는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사외이사와 비슷한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는 12명이다. 압도적으로 독립이사의 비율이 높다. 유일한 사내이사는 메리 베라 GM 최고경영자(CEO)다. 이사회 의장도 베라 CEO가 맡고 있다.
BSM은 9개 역량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상장사 CEO 경험(Public co. CEO) △산업(Industry) △생산(Manufacturing) △기술(Technology)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재무(Finance) △마케팅(Marketing) △사이버(Cyber) △ESG 전문가(ESG Expertise) 등이다.
GM의 BSM 역량 항목 9개 중 기아의 이사 전문 분야와 맞닿아 있지 않은 항목은 '마케팅'과 '사이버' 등이다. 기아 이사회에는 마케팅과 사이버 분야 전문가가 있지 않다. 기아 CEO인 송 사장은 기획과 관리 부문에서 경험을 쌓았다. 사외이사 중에도 마케팅과 사이버 분야에서 경력을 보유한 이는 없다.
테슬라 BSM에서도 확인되듯이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현재 사이버 분야 전문가 1명 이상을 이사회에 두고 있다. 자동차가 점차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변화해가는 상황에 발맞춰 사이버 영역에서의 보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GM이 사이버 분야 전문가로 분류한 린다 고든 이사와 조셉 히메네스 이사 모두 사이버 보안 관련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GM 이사회에서 눈에 띄는 점은 13명의 이사가 모두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BSM을 구성하는 9개 역량 가운데 모든 이사가 보유한 유일한 역량이다. 여기서 가리키는 리스크는 정부 정책 변화, 기후 위기, 친환경차 산업으로 전환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사실 어느 기업에 있든 이사라면 필히 갖춰야 하는 역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GM이 크게 강조하는 이사 역량으로 판단된다.
현재 GM 이사회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전미자동차노조(UAW)의 파업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금 인상안을 수용한 결과로 과거보다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새로운 예산 계획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변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폐기한다는 입장이다. GM은 지난해 실적 악화로 전기차 생산량 확대 시점을 무기한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