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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의안에는 인사부터 재무, 투자, 사회공헌, 내부통제 등 기업 경영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가 반영돼 있다. 안건 명칭에 담긴 키워드를 살피면 기업이 지향하는 가치와 경영진의 관심사, 사업 방향성이 드러난다. THE CFO는 텍스트마이닝(text mining) 기법을 활용해 주요 기업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 명칭 속 단어 빈도를 분석하고 핵심 키워드와 기업의 관계를 살펴본다.
'배터리 제조사' LG에너지솔루션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뒤를 이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시가총액 3위에 오른 기업이다. 이사회가 처리한 안건 속에서 많이 눈에 띄는 키워드가 '출자'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격하는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이사회에 상정된 173개 의안 중 15건이 출자와 관련된 의안으로 나타났다.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해외 완성차기업과 합작사를 세우고 배터리 공장을 증설하며 생산능력(CAPA)를 확대하는 행보가 드러난다.
◇'4000억 이상' 시설투자, '1000억 이상' 주식취득 심의 2021년부터 올 6월까지 LG에너지솔루션 이사회에는 173개 의안이 상정됐다. 130건(75.1%)은 이사진 표결을 거치는 승인사항으로 분류됐고 나머지 43건(24.9%)은 보고사항으로 적시됐다. 같은 기간 이사회는 43회 소집됐는데 가장 활발하게 회의를 개최한 해는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던 2021년으로 19차례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는 5회 열렸다.
안건명에 기재된 단어 중 승인, 보고, 연도 등의 용어를 제외하고 출현 빈도에 따라 집계한 결과 '집행임원'이 총 20회로 단연 많이 등장했고 '출자'가 명시된 의안이 15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선임·경영실적(각 14회) △ESG(11회) △지급보증·임시주주총회·운영실태·소집(각 9회) △투자·주주총회·규정·개정(각 8회) 등의 키워드가 관찰됐다.
이사회 안건 가운데 집행임원을 둘러싼 의안을 살피면 임원 선임, 성과인센티브 지급 승인, 인사관리 규정 개정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집행임원은 LG에너지솔루션이 미등기임원을 포괄해 부르는 명칭으로 상법에 명시된 집행임원과는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사내에서 집행임원은 '대표이사로부터 구체적 업무수행 권한을 위임받은 자'를 지칭한다. 대표이사의 직무를 조력하는 취지가 반영됐다.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회로부터 명확한 권한과 의무를 위임받는 상법상 집행임원과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올 5월에 공시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상법 제408조의 2에 따른 집행임원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을 서술한 맥락과 맞닿아 있다.
출자가 상위 2위 키워드에 오른 배경은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3년여 동안 빠르게 사업 기반을 다진 행보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2020년 12월 LG화학에서 분할 설립된 이래 충북 청주 오창 공장을 넘어 중국 난징, 폴란드 브로츠와프, 미국 미시간주 등 세계 각지에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올 2분기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판매시장 점유율은 14.7%로 중국 CATL(31.6%)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배터리 생산시설 조성에 힘을 쏟으면서 이사회 역시 분주하게 대응했다. 이사회 심의·의결사항 가운데 재무사항을 살피면 출자가 눈길을 끈다. 4000억원 넘는 신·증설 시설투자 외에도 2000억원 이상을 집행하는 신규·증설 투자 목적의 출자 사안이 이사회 상정기준에 부합한다. 다른 회사 주식을 1000억원어치 넘게 취득하는 사례도 표결 대상이다.
◇출자 연관단어 '조인트벤처·애리조나' 주목 출자 안건 중에는 '조인트벤처(JV)'를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올 3월 이사회는 GM과 합작 설립한 법인을 겨냥한 출자 한도를 승인했다. 지난해 5월에는 현대차와 힘을 합쳐 설립한 북미권역 조인트벤처에 출자하는 의안을 가결했고 2022년 3월에는 스텔란티스 JV 출범과 맞물려 자금을 투입하고 지급보증을 승인했다.
합작사 운영 기조는 LG에너지솔루션의 사업 확장을 뒷받침하는 핵심전략이다. 배터리가 전기차나 전력저장장치(ESS)에 탑재되는 만큼 고객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최대 과업이다. 자본금을 분담해 법인을 설립해 공장을 가동하면 장기 거래선을 확보하는 동시에 투자비용을 절감하는 데도 유의미하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자리잡은 생산시설을 둘러싼 이사회 관심도 각별한 모양새다. 해외 국가나 지역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2건 이상 집계된 키워드는 '애리조나'가 4회로 유일했다. 2022년과 지난해 잇달아 현지 신설법인 출자와 지급보증을 승인하고 올 2월에는 원통형 공장 건물 리스에 대한 보증안도 처리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4조2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배터리 제조시설을 독자적으로 짓는 구상을 수립했다. 36기가와트시(GWh) 용량을 생산하는 역량을 갖추는데 주안점을 뒀다.
여기에 국한하지 않고 동일한 부지에 3조원을 별도 투입해 17GWh 수준의 전력저장장치(ESS) 전용 리튬인산철(LFP) 전지 공장을 건설하는 밑그림도 그렸다. 다만 세계적으로 배터리 수요가 둔화되면서 올 6월 ESS 시설 건립을 일시 중단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