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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기아 역대 재경본부장(CFO)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장 승진과 함께 기아 또는 타계열사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현대차그룹이 기아 CFO를 단순 곳간지기가 아닌 사업을 개발하고 확대할 수 있는 '리더'로 바라보는 것이다. 기아 CFO는 재직 기간에 이사회 일원으로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오너를 보좌하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기아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1998년 이후 재경본부장을 역임한 인물은 총 8명이다. 현직자인 주우정 부사장을 제외하면 7명 가운데 4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바로 정학진 부사장과 김치웅 부사장, 안희봉 부사장, 박한우 부사장이다.
먼저 첫 번째 재경본부장인 정학진 부사장은 2001년 말 임기를 마치고 사장 승진과 함께 한국철도차량(현 현대로템) 대표에 선임됐다. 당시는 현대차가 대우종합기계로부터 한국철도차량 지분을 인수하며 계열사로 막 편입한 때였다. 정 부사장은 기아에 이어 신생 계열사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이번에는 CFO가 아닌 대표였다.
김치웅 부사장은 2007년 초 재경본부장에서 물러난 뒤 사장으로 승진하며 글로비스(현 현대글로비스) 대표로 이동했다. 글로비스는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 운송 기능을 효율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측면도 있지만, 당시 정의선 사장의 승계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적도 있었다. 김 부사장은 오너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은 것이다.
김 부사장 뒤를 이은 지낸 안희봉 부사장은 2009년 5월 사장 승진과 함께 서울시메트로9호선 대표에 선임됐다. 서울 도시철도 9호선 건설과 운영을 위해 2004년 만들어진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였다. 특히 그룹에 편입된 지 오래되지 않은 현대로템에 큰 사업이었다. 안 부사장은 기아 CFO에 이어 중요 직책을 이어받았다.
마지막으로 박한우 부사장은 2012년 초부터 2014년 말까지 재경본부장으로 근무한 뒤 사장 승진과 함께 기아 대표에 올랐다. 역대 재경본부장 가운데 유일하게 기아 대표에 올랐다. 2020년 초까지 5년 넘게 대표로 근무하며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대를 준비하는 데 기여했다.
이외에 구태환 부사장과 이재록 부사장, 한천수 부사장은 CFO 임기를 마치고 모두 현대차그룹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특히 구 부사장의 아쉬움이 컸을 것이라는 평가다. 그는 각각 로템과 글로비스 대표·사장으로 승진 이동한 정학진 부사장, 김치웅 부사장과 함께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람들'로 묶였다.
대주주인 현대차가 기아 CFO를 중용해온 까닭에 현직자인 주우정 부사장의 행선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주 부사장은 2019년 초부터 현재까지 6년째 재경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대 CFO 가운데 최장수일 뿐 아니라, 유일하게 기아에서 임원 승진한 인물이다. 어느 CFO보다 기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주 부사장의 이러한 점은 현대차와 기아 모두 주목하는 부분이다. 회사는 지난해 2월 주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신임하면서 "전략투자와 수익성 극대화를 계획하는 상황에서 재무적 의사결정 역량 강화가 중요해졌다"며 "기아의 재무적 상황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주 부사장을 재선임함으로써 합리적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