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KT는 정부조직에서 공기업(한국통신)이었다가 2002년 8월 민영화 됐다. 하지만 소유분산 기업으로 민영화되면서 오너십이 없는 탓에 정치권의 입김이 여전히 거세다. KT의 이사진을 보면 매 기수마다 정치권 출신 사외이사들이 포함됐다.
국민연금에서 현대차그룹으로 대주주가 바뀐 지금도 전 정권 출신 사외이사가 2명이 이사회에 있다. 최양희 사외이사는 박근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출신이며 윤종수 사외이사는 이명박 정부 환경부 차관 출신이다.
◇외풍에 CEO 교체, 사외이사들도 사의 표명
KT는 일반적으로 8명의 사외이사 체제를 유지했다. 사내이사까지 합치면 10명 정도가 이사회 구성원이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이사 수가 많은데 이는 KT그룹이 미디어, 통신, 부동산, 금융, 위성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서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기반이 잘 닦였다.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산하 소위원회를 보면 △지배구조위원회 △감사위원회 △평가 및 보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이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이사회에서는 대표이사(CEO)의 경영계약 평가와 해임건의, 보수·지급 방법도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정치적 외풍 등은 KT의 이사회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하는 변수다. 지난해 6월 개최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대거 교체됐다. 정치권이 연임이 결정된 최고경영자(CEO)와 그 후임자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사의를 표했기 때문이다. 이강철 대동 경영고문과 김대유 원익투자파트너스 부회장, 유희열 전 과학기술부 차관, 벤자밍 홍 전 라이나생명 대표가 중도 사임한 인사들이다.
KT는 이를 계기로 지난해 3월 사외이사 주주추천 제도를 도입하고 사외이사 후보 심사를 위한 인선자문단 구성과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사내이사를 배제하는 등 체계를 마련했다. 그 해 6월 열린 임시주총에서 주주 추천으로 3명의 사외이사를 받았다. 그 중 두 명은 올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현대차그룹의 추천인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경영참여 대한 우려를 보냈다. 그러나 이때 전 정권 출신도 2명이 사외이사로 들어왔다.
이사회 의장과 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평가 및 보상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맡고 있는 윤종수 사외이사와 지배구조위원회 위원장, 지속가능경영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며 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평가 및 보상위원회에 소속된 최양희 사외이사다. 윤 사외이사는 이명박 정부 환경부 차관 출신이며 현재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속해 있다. 최양희 사외이사는 박근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출신으로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이다.
◇사외이사 코드, 미디어→ICT→다양화
역대 KT 이사들을 보면 관 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돼 있다. 기업에서 대관업무를 강화하고 규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정치권 및 관료 출신을 영입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KT의 경우는 관료 출신의 인사가 낙하산 인사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았다. 오너 기업이 아닌 소유분산 기업인데다 이런 업체들은 통상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2012~2013년 KT 사외이사를 지낸 박병원 이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김대유 전 사외이사(2018~2023년)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이강철 전 사외이사(2018~2023년)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사외이사들의 경력이 재조명되면서 낙하산 비판이 일었다.
CEO별로도 이사회 구성원 이력이 조금씩 코드가 있었다. 2010년부터 KT 사외이사 내역을 보면 미디어 산업 출신들이 많았다. 2010~2013년 이춘호 사외이사(전 EBS 이사장), 동아일보 주필을 지냈던 이현락 사외이사가 미디어 전문가로 활동했다.
황창규 전 회장(2014~2023년) 시절에는 송도균 전 SBS 대표이사, 임주환 전 한국통신학회 명예이사, 김대호 인하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계민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 겸 편집제작본부장 등이 차례로 사외이사를 맡았다.
구현모 전 대표 시기부터는 미디어 관련 전문가보다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을 확대했다. 디지털플랫폼기업(DIGICO, 디지코)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던 구 전 대표의 비전과 맞물린 행보다. 지난해 6월 구성된 이사진의 경우 미디어 분야 전문가에서 다채로워진 부분도 있다. 김용헌(법률), 최양희(미래기술), 곽우영(ICT), 윤종수(ESG), 안영균(회계), 이승훈(재무), 김성철(리스크·규제), 조승아(경영) 등의 성향들로 포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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