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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기아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재경본부장의 지위는 높다. 현직자인 주우정 부사장을 포함해 역대 8명 모두 사내이사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있다. 모두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등 오너들과 중요 사항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했다.
이러한 특징은 1998년 기아가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부터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피인수기업에서 CFO 역할은 중요하다. 자산 재평가와 효율화로 대표되는 구조조정과 인수후통합(PMI) 작업은 재무·회계에 전문성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당시 현대차는 여러 임원을 기아에 보내면서 CFO만은 사내이사에 선임했다.
1998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기아 역대 재경본부장은 총 8명이다. CFO 재직 중 마지막 직급을 기준으로 정학진 부사장, 구태환 부사장, 김치웅 부사장, 안희봉 부사장, 이재록 부사장, 박한우 부사장, 한천수 부사장, 주우정 부사장이 순서대로 역임했다. 주 부사장은 현직자다.
8명 모두 빠짐없이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했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중 적어도 한 사람은 꼭 기아 이사회 일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오너와 함께 주요 경영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책임이 무거운 자리이지만 오너에게 직접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의 자리다.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된 직후부터 재경본부장을 사내이사에 앉히며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8년 12월 현대차는 관리인(김수중 사장)을 제외하면 총 6명의 임원을 기아에 보냈다. 이 가운데 사내이사로 선임된 임원은 정학진 부사장이 유일했다. 정 부사장은 1999년부터 공동 대표이사인 정몽구 회장과 김 사장을 보좌했다.
인수 후 통합 과정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된 이후에도 재경본부장을 계속해서 이사회에 참여시켰다. 당장 과제였던 재무구조 개선과 현대차와 물리적·화학적 결합이 이뤄졌기 때문에 재경본부장의 구체적인 역할은 성장전략 수립과 지원으로 바뀌었다.
애초에 현대차는 기아를 인수할 때부터 중복설비를 없애기보다는 최대한 활용해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현대차가 기아를 흡수합병하는 안도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원화 체제를 유지하며 각자 고유의 브랜드 정체성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현대차는 고급화, 기아는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였다.
기아는 경영 정상화와 통합 과정이 이뤄졌다고 평가받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성장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두 번째 재경본부장인 구태환 부사장부터 여덟 번째 재경본부장이자 현직자인 주우정 부사장까지 이러한 전략에 따라 움직였다. 성장 지원이 중요 과제였다.
이 기간 기아는 크게 성장했다. 구 부사장이 선임되기 직전 해인 2000년 8조8287억원이던 총자산은 2022년 73조7109억원으로 779% 확대됐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1조4685억원에서 86조5590억원으로 655%, 영업이익은 1626억원에서 7조2331억원으로 4347%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213%에서 87%로 떨어지며 재무구조도 향상됐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며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