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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THE CFO가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CFO 인사에 대한 기업별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기아에는 '기아로 입사해 기아에서 성장한' 재경본부장(CFO)이 없다. 소위 말하는 순혈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현대그룹으로 입사한 뒤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다른 계열사에서 경험을 쌓고 기아 CFO에 선임됐다.
많은 기업에서 돈과 숫자 등 예민한 정보를 다루는 CFO에는 순혈을 선호한다. 기아가 이러한 흐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대주주가 현대차로 바뀐 지 아직 한 세대(약 25~30년)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이미 여러 자리에서 검증한 인물을 등용하는 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기아 대졸공채가 2000년에 재개된 점을 고려하면, 20여년이 지난 현재 어느 때보다 순혈 CFO를 볼 가능성은 커졌다. 최근 CFO 선임 사례에 따르면 연령대는 50대 중반, 직급은 전무 이상인 인물이 대부분이다. 대졸공채로 입사한 뒤 최소 20년 이상의 경험이 요구된다.
기아 역대 CFO 8명(현직자 포함) 가운데 기아 대졸공채 출신은 없다. 재직기간에 마지막 직급을 기준으로 첫 번째 CFO인 정학진 부사장과 박한우 부사장은 현대자동차써비스(현대차에 흡수합병)로 입사했다. 구태환 부사장과 안희봉 부사장, 이재록 부사장은 현대그룹으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치웅 부사장은 현대차, 한천수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으로 입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한 부사장은 대학 졸업 후 다른 기업에서 근무하다, 30대 중반에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으로 이직하면서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현직자인 주우정 부사장은 현대정공으로 입사했다.
기아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뒤 CFO에 선임된 인물도 드물다. 대부분 대주주인 현대차를 포함한 다른 계열사에서 오래 근무했다.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차례로 CFO를 지낸 정학진 부사장과 구태환 부사장, 김치웅 부사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사람들로 통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정공 사장 시절, 아버지인 정주영 창업회장으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보좌한 재경부문 인물이 세 부사장이다. 정 명예회장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며 능력과 인성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을 인수 후 통합(PMI) 과정 시기에 중용했다.
이외에 이재록 부사장과 박한우 부사장은 현대차에서 오래 몸담았다. 두 부사장 모두 현대차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안희봉 부사장은 오토에버(현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차, 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에 흡수합병) 등 다양한 계열사에서 일했다. 한천수 부사장은 2000년대 초반 기아 국제금융팀과 IR팀에서 근무했지만, 두각을 보인 곳은 현대제철이다.
다만 현 CFO인 주우정 부사장은 상대적으로 기아에서 근무한 시간이 많다. 주 부사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현대제철 재무관리실장으로 일한 4년(2014~2018년)을 제외하면 전부 기아 소속이었다. 또한 그는 역대 CFO 가운데 유일하게 기아에서 몸담은 와중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기아가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대졸공채를 재개한 건 2000년이다. 이때 입사한 이들의 연령은 현재 50대 전후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기아는 주로 50대 중반의 전무급 이상 임원을 CFO에 앉혔다. 이를 고려하면 주우정 부사장의 후임 CFO는 기아로 입사해 기아 재경부문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임원이 선임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