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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풍향계

'현금 넘치는' 현대글로비스, 순상환 기조 4년째 지속

②올 상반기 5000억, 2021년 이후 1.8조 순상환…빚 갚아도 현금은 점프

고진영 기자  2024-11-05 16:03:05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현대글로비스가 여윳돈으로 대거 빚 상환에 나서고 있다. 선박금융을 합쳐도 외부에서 조달한 것보다 갚은 돈이 더 많은 순상환 기조가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수년째 호황이 이어지면서 현금유입이 풍부해진 데다,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는 만큼 재무안정성을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현대글로비스는 상반기 말까지 6개월간 총 5251억원을 순상환했다. 별도 기준으로 금융기관 대출이나 사채, 리스부채, 장기미지급금 등을 모두 합쳐 셈한 수치다. 팬데믹 탓에 업황이 주춤했던 2020년엔 순조달이 불가피했지만 2021년 회복세로 돌아선 뒤론 쭉 순상환 기조를 유지 중이다.

적극적 조달이 불필요해진 것은 영업현금 유입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2020년 7700억원 수준이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2021년 9600억원으로 뛰었고 이후론 매년 1조원을 넘는 영업현금을 기록 중이다.

덕분에 현대글로비스가 2021년부터 2023년 순상환한 금액은 총 1조3000억원 수준, 올해 몫까지 합치면 1조8429억원에 이른다. 연결 기준으로 봐도 같은 기간 1조5000억원 수준의 빚을 차환없이 갚았다. 특히 작년까진 리스부채와 장기미지급금 위주로 순감소가 이뤄진 반면 올해는 은행 대출도 축소하려는 흐름이 눈에 띈다.


실제로 작년까지 3년 동안 현대글로비스는 별도 리스부채를 약 6800억원, 장기미지급금을 5800억원가량 순상환한 반면 금융기관 차입금은 610억원 순감소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올 상반기엔 순상환액 중 절반을 넘는 2807억원이 금융기관 차입에서 발생했다.

전체 차입금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상반기 말 현대글로비스의 별도 총차입금을 보면 3조3357억원이다. 2020년 3조원 수준이었는데 오히려 증가한 이유는 외형 확대와 함께 리스부채와 장기미지급금 등도 덩달이 불었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는 금융기관 대출과 사채만 따졌을 땐 빚이 1조원 남짓에 불과하지만 장기미지급금, 리스부채가 각각 1조원씩 더 차지하다 보니 전체 차입규모가 훌쩍 커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중 장기미지급금은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계약(BBCHP, Bare Boat Charter Hire Purchase)과 관련한 선박금융 차입이다. 연불방식으로 선가를 지급하고 일정 계약기간이 지나면 소유권을 취득(Hire Purchase)한다. 용선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론 선박의 매매인 셈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선박이 인도되는 시점에 유형자산(선박)으로 잡고 향후 상환될 금액을 장기미지급금으로 계상하고 있다.

또 은행 대출의 경우 만기가 1년 내에 돌아오는 별도 차입금이 7333억원으로 차입구조가 단기화 된 편이이다. 하지만 실질적 상환 부담은 높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 대부분인 7160억원이 매출채권할인 관련 차입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현대글로비스는 신한은행 등과 무신용장 거래조건(D/A) 환어음 할인약정 및 상업어음 할인약정을 체결하고 있다. 금융기관에 매각한 매출채권 중 만기가 아직 오지 않은 금액을 단기차입금으로 계상하는 방식이다.


현금유입이 넘치다 보니 현대글로비스는 부지런히 빚을 갚고도 보유현금이 되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1조6000원대였다가 올 상반기 말 2조9273억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 2조원에 가까운 돈을 순상환했지만 한 해 유입되는 영업현금이 1조~1조5000억원 안팎에 달하다 보니 여유가 충분했다.

이에 따라 현대글로비스의 별도 순차입금은 올 6월 말 기준 4000억원 수준까지 줄었다. 3년 전 1조3000억원을 넘겼는데 총차입금 규모는 늘었어도 차입부담은 대폭 완화된 셈이다. 올 상반기 현대글로비스가 창출한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8000억원이니 연환산하면 25%만 써도 순차입금을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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