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도착한 미래'로 평가받는 전기차를 제외하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사업은 '포티투닷(42dot)', 도심항공모빌리티 사업은 '슈퍼널(Supernal)'에 맡겼다.
두 계열사 가운데 현재 더 주목받는 쪽은 포티투닷이다. 지난 5월 현대차와 기아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총 1조원을 출자하겠다고 밝히면서 화제가 됐다. 포티투닷 대표이자 현대차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장인 송창현 사장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높은 신뢰도 이목을 이끄는 이유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슈퍼널도 갖고 있는 특징이다. 2021년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가 총 2497억원을 출자한 뒤 세 개 계열사는 2022년에는 이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4379억원을 추가 출자했다. 슈퍼널을 이끄는 신재원 사장도 정 회장이 직접 영입했을 정도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슈퍼널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배경에는 포티투닷처럼 법인 소재지와 활동 무대가 국내가 아니고 미국인 점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자율주행과 AI를 적용한 자동차보다 도심항공모빌리티가 더 먼 미래이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청계천 일대에선 '42dot'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인 검은색 소형 자율주행 버스를 볼 수 있다.
반면 'Supernal'이라는 글자가 적힌 도심항공모빌리티는 아직 실물로 보기 어렵다. 슈퍼널 측이 홈페이지에서 밝힌 대로 아직은 '하늘 위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중(We’re building new roads in the sky)'이다. 도심항공모빌리티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진심은 의심받지 않지만 이목을 끌기에는 사업이 초기 단계다.
하지만 포티투닷에는 없지만 슈퍼널에는 있는 게 있다. 바로 최고재무책임자(CFO) 직책이다. 법인 등기에 따르면 포티투닷 이사회는 송창현 대표를 포함해 총 4명이다. 이들 가운데 직책이 CFO인 이사는 없다. 송 대표와 안효석 감사(현 회계관리실장) 등이 CFO 역할을 나눠 맡는 것으로 풀이된다.
슈퍼널에는 CFO라는 직책이 '공식적'으로 있다. CFO는 천익수 전 현대차 시니어매니저다. 그는 슈퍼널 전신인 '제네시스 에어 모빌리티'가 2020년 설립됐을 때부터 CFO를 맡고 있다. 그 사이 현대차그룹이 해외에 설립했거나 경영 참여를 위해 투자한 곳 가운데 경영진 일부를 교체한 곳도 있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신뢰를 꾸준히 받고 있다.
1980년대 초반생으로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천 CFO는 2009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이후 △손익 분석 △재무 계획과 분석(FP&A) △국제 조세 △해외 자회사 관리 등 재경본부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출중한 어학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슈퍼널에 공식적으로 CFO 직책을 만들고 국내 본사 출신의 인물을 선임한 이유는 직접 관리하기에는 거리와 시차 등 물리적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관리 역량을 슈퍼널에 맡김으로써 슈퍼널이 직접 현지 니즈를 파악해 사업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법인 관리는 본사 직원들을 대거 파견해 관리하는 방식과 초기에 운영 프로세스를 수립한 뒤 CFO 중심으로 현지화하는 방식이 있는데 슈퍼널은 후자로 보인다"며 "현지 니즈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서는 관리 역량을 어느 정도 현지법인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천 CFO의 역할은 슈퍼널 관리가 아닌 슈퍼널 발전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그는 회계에서부터 투자자 소통(IR),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 기술력을 선점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유치하고 투자처를 발굴하는 업무도 중요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