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현대자동차가 재무안정성에서, 테슬라는 순현금에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현금은 현금및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등 자산 가운데 가장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서 전체 차입금을 차감한 걸 뜻한다. 순현금 상태는 전체 차입금을 일시에 상환해도 현금이 남는다는 의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차가 순현금 상태가 아니거나, 테슬라의 재무안정성이 약한 건 아니다. 양사 모두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풍부한 현금보유량을 자랑한다. 추후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 역량 향상을 위해 대규모 투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양사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현대차의 부채비율을 살펴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아메리카 등 여신전문금융회사를 자회사와 손자회사 등으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금융사들은 국내외에서 현대차 차량을 구매한 고객에게 차량 할부와 리스, 결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수신 기능이 없는 캐피탈사와 카드사는 고객에게 빌려줄 돈을 회사채 발행 등으로 확보한다. 다른 업종보다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대캐피탈은 561%, 현대카드는 517%다.
현대차의 부채비율은 국내외 자회사 등을 포함한 연결기준과 국내외 자회사 등을 제외한 별도기준의 격차가 크다. 테슬라가 현대차처럼 캐피탈사와 카드사를 별도 자회사로 두고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양사의 부채비율을 비교할 때 현대차는 별도기준을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
현대차는 아직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별도기준 부채비율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연결기준 부채비율만 전년 대비 4%p 하락한 177%로 밝히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보면 현대차 부채비율은 40%다. 같은 시기 연결기준 부채비율 176%의 3분의 1 이하 수준이다. 연간 부채비율도 연결과 별도 기준이 비슷한 비중을 보일 것으로 추정된다.
테슬라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전년 대비 11%p 떨어진 68%다. 현대차 별도기준 부채비율보다 다소 높다. 하지만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일반 기업의 부채비율 적정선을 200%로 평가하는 점을 고려하면 테슬라와 현대차 모두 우수한 재무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재무안정성 지표인 차입금의존도도 현대차는 3%(2023년 3분기 말 별도기준), 테슬라는 5%로 양사 모두 매우 낮은 수준이다. 통상 국내 신평사들은 차입금의존도가 30% 이하이면 안정적으로 평가한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가 낮다는 건 현대차와 테슬라 모두 전 세계적으로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음에도 현금창출력을 넘어설 정도로 무리한 설비투자는 반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유형자산 취득(자본적 지출)액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이 플러스(+)인 시기가 많았다는 의미다.
실제 현대차의 별도기준 잉여현금흐름은 지난해 3분기까지 약 7조원이었다. 2022년 연간으로도 잉여현금흐름은 약 4조원이었다. 테슬라의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은 약 43억달러(5조7300억원), 2022년은 약 75억달러(10조원)였다. 무리하지 않는 투자와 함께 현금창출력 자체가 뛰어난 점도 양사가 굳이 외부에서 큰 자금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수조원의 잉여현금흐름과 낮은 부채비율로 현대차와 테슬라는 모두 순현금 상태다. 모든 채무를 일시에 상환하는 데 보유 현금 전액을 써도 현금이 남는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약 7조3008억원(2023년 3분기 말 별도기준), 테슬라는 238억달러로 한화 약 31조원(지난해 말 기준)의 순현금 상태다. 테슬라가 현대차보다 4배 이상 많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