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금융사 인사코드

현대카드, '정태영 리더십'과 호흡맞추는 공동대표 조건은

강력한 오너십 바탕으로 고속 성장…투톱체제·비금융인 선임 등 변화에도 주목

김보겸 기자  2024-09-03 10:49:30

편집자주

기업 인사에는 '암호(코드, Code)'가 있다. 인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관점의 해설 기사가 뒤따르는 것도 이를 판독하기 위해서다. 또 '규칙(코드, Code)'도 있다. 일례로 특정 직책에 공통 이력을 가진 인물이 반복해서 선임되는 식의 경향성이 있다. 이러한 코드들은 회사 사정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주요 금융지주 인사의 경향성을 살펴보고 이를 해독해본다.
현대카드는 정체성을 카드사로 한정하지 않고 있다. 당장 20년가량 1인 체제를 이끌어 온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부터가 비금융인 출신이다.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의 정체성을 데이터 전문기업으로 제시하면서 다양한 인적 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정태영 1인체제' 역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3년 전 공동 대표를 선임하는 등 체제에 변화를 주면서다. 비금융인도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 규범도 바꿨다. 정태영 부회장에 이어 현대카드에 비금융 출신 대표가 오를 지 주목된다.

◇현대카드, 20년가량 '정태영 1인 체제'

현대카드는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 온 금융사다. 이 중심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부회장이 있다.


정태영 부회장은 카드사태 여파가 한창인 2003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카드사태로 타격을 입은 현대카드의 경영을 정상화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취임 직전까지 정태영 부회장에게 금융사 경력은 전무했다.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장을 거쳐 2000년에는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을 지냈고 2002년까지는 기아차 구매총괄본부장으로 근무했다.

같은 기업계 카드사인 삼성카드와는 상반된 구조다. 삼성카드는 그룹 차원에서 전문경영인 과정을 밟은 이들로 계열사 대표이사를 구성한다. 성과에 기반해 대표이사의 장기 경영환경을 보장하지만 6년을 넘기기 어렵다. 반면 현대카드는 2003년부터 21년간 정태영 부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이는 카드업계 후발주자인 현대카드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임기에 구애받지 않고 시장 환경에 따른 장기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하기에는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오너 경영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실제 카드사태 직후 경쟁 카드사들이 몸을 사리는 와중에도 현대카드는 그룹과 협상을 통해 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증자를 이끌었다. 과감하게 영업 규모를 확대한 결과 후발주자임에도 중위권 카드사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반대 경우도 있었다. 취임 10년째인 2013년 정태영 부회장은 새로운 혁신 전략 '현대카드 챕터2'를 발표하며 외형 확장보다는 내실 경영을 강조했다. 경기 침체와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한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정태영 부회장은 "오히려 카드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게 목표"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량 고객에 집중하며 사업을 단순화한 결과 회원 수와 점유율은 감소했지만, 내실 경영 기조는 현재까지도 현대카드가 업계 최상위 수준의 건전성 지표를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장기적 관점의 투자도 가능했다. 지난해 3월 국내 카드사 중 처음으로 론칭한 애플페이가 대표적이다. 수년에 걸친 애플과의 협상은 정태영 부회장의 오너십 없이는 성사하기 쉽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현대카드가 현재까지 인공지능(AI)에 1조원 넘게 투자한 것 역시 강력한 오너십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동대표 체제로 변경…애플페이 론칭·성과 인정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오너십 체제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2021년 업계 최연소 김덕환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공동 대표 체제를 구성하면서다.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총괄한다면 CEO 실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김덕환 대표의 역할이다.

일신상 사유로 돌연 사임했지만 현대카드로 복귀한 점도 주목된다. 김덕환 대표는 취임 약 1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임기를 1년 6개월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김 대표가 돌연 사퇴하자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정태영 부회장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하지만 4개월 뒤 김덕환 대표는 카드부문 대표로 복직했고 이사회 선임 절차를 밟아 대표이사로 돌아왔다. 새로운 대표이사가 선임될 것이란 전망을 뒤집은 것이다. 적임자를 찾지 못한 현대카드가 김덕환 대표에게 복귀를 요청했고 김 대표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에서의 경력이 애플페이 론칭과 관련해 정태영 부회장의 신임을 산 것으로 풀이된다. 1972년생인 김덕환 대표는 선임 당시 49세로 업계 최연소 대표이사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체이스 맨허튼뱅크, 로얄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 GE캐피탈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근무했다. 2011년 현대캐피탈 입사로 정태영 부회장, 정 부회장의 부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사장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9년 현대카드 카드부문 대표를 거쳐 현대카드 대표이사에 올랐다.

카드부문 대표로 재임 당시 냈던 성과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 신용판매 취급액은 2017년 79조5000억원에서 김덕환 대표가 취임한 2018년엔 7.5% 증가한 85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10.1% 늘어난 94조1000억원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는 99조8000억원으로 6.1% 증가했다.

정태영 부회장 이후에도 비금융인 CEO가 나올 지 주목된다. 현대카드는 지난 2021년 비금융인도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다. 기존 최고경영자의 자격요건은 금융업 또는 계열회사의 경영진 등으로 3~5년 이상 활동한 자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비금융업 경력자라도 이사회가 최고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하면 CEO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추가했다. 카드사를 넘어 디지털 부문을 강화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허들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