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아메리카가 올 들어 벌써 80억달러(11조원)에 육박하는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다. 지난 3월 달러채 조달 후 3개월 만에 글로벌 자본시장을 찾았는데 단숨에 37억5000만달러를 조달했다. 회사 발행 역사상 단일 회차 기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이제 관심은 연간 조달 실적에 쏠린다. 지난해 공모 한국물을 통해 90억달러를 마련했는데 이를 무난히 뛰어넘을 전망이다. 한국물 최대 이슈어(Issuer)인 한국수출입은행의 연간 발행액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출입은행 조달 실적 뛰어넘을까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아메리카는 미국 현지시간 기준 18일 오후부터 글로벌본드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돌입했다. 트랜치(Tranche)는 2년·3년·5년·7년물 고정금리부채권(FXD)과 3년물 변동금리부채권(FRN)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금리 조건은 만족스럽게 결정됐다. 2년물 FXD의 최초제시금리(IPG)는 동일 만기 미국 국채(T)에 105bp를 더한 수준이었는데 78bp를 더한 수준으로 최종 금리가 정해졌다. 3년물과 5년물, 7년물 IPG는 각 T+115bp, T+135bp, T+145bp였는데 각 T+90bp, T+110bp, T+120bp로 금리를 25bp씩 끌어내렸다. 3년물 FRN의 금리는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에 104bp를 더한 수치다.
현대캐피탈아메리카는 각 만기별로 7억5000만달러씩 총 37억5000만달러 발행을 확정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35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수요예측에서 투자자 관심이 몰려 2억5000만달러를 증액했다.
37억5000만달러는 현대캐피탈아메리카 글로벌본드 발행 역사상 최대 조달액이다. 지난해 6월과 2021년 9월 30억달러 규모 달러채를 찍은 적은 있지만 이를 뛰어넘은 건 처음이다.
역대급 발행 규모만큼 조달 행보도 분주하다. 현대캐피탈아메리카는 올해 1월 한국물 첫 주자로 등판해 일찌감치 25억달러 조달에 성공했다. 지난 3월 재차 시장을 찾아 17억달러를 마련했다. 이번 발행까지 포함해 지금까지 79억5000만달러를 확보한 셈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한국물 발행 실적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현대캐피탈아메리카는 작년 한해 90억달러 규모 공모 외화채를 찍었다. 발행 실적이 전무했던 2022년을 제외하곤 최근 수년 동안 하반기에도 꾸준히 글로벌 자본시장을 찾아왔기에 추가 조달이 점쳐진다.
관심은 우리 기업 중 최대 이슈어 등극 여부에 쏠린다. 지난해 현대캐피탈아메리카가 최대 조달 실적을 경신했음에도 수출입은행이 92억달러 규모 공모 한국물을 발행해 최대 발행사 지위를 놓치지 않았다. 국책은행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와 동일한 신용도를 바탕으로 활발한 외화 조달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물 발행사 중 처음으로 선진국형 방식인 SSA(Sovereign, Supranational and Agency) 스타일을 택한 한국산업은행도 핵심 발행사 중 한 곳이다. 다만 1분기까지 현대캐피탈아메리카가 42억달러 어치 한국물을 발행해 30억달러를 조달한 산업은행, 20억달러를 조달한 수출입은행보다 앞서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가 신용도 지원 제공 현대캐피탈아메리카가 발행을 이어가는 이유로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실적 호조와 관련이 깊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다 보니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조달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시장 소매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2022년 142만대, 지난해 150만대로 꾸준히 증가했다. 올해 1분기까지는 약 34만대를 판매했다. 미국 판매가 늘어나자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소매금융 포트폴리오도 덩달아 탄탄해지고 있다는 평이다.
미국 시장 판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현대차 입장에서도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외화채 조달은 주요 관리사항이다. 현대차는 투자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용 지원(Support Agreement)을 제공했다. 지급보증보다는 단계가 낮지만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다.
올해 들어 현대차그룹을 바라보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바뀐 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올해 2월 무디스는 현대차와 기아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에서 'A3'로 높였다. 피치도 마찬가지로 두 회사의 신용도를 A급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