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자본시장을 흔들었던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는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한국의 지자체가 보증하는 채권도 상환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을 제공했다.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는 원칙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관례를 깼다는 점에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두 사태가 시장 전반에 영향을 주자 대안이 나왔다. 정부는 레고랜드로 말라버린 단기자금시장을 살리고자 수십조원의 자금을 투입했고 4대 시중은행은 흥국생명이 발행한 RP 매입을 통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해줬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했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신뢰를 중시하는 것은 금융권만의 이야기일까. 최근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과 일진머티리얼즈 M&A로 주목받고 있는 롯데케미칼을 보면 금융권의 자구 노력은 양반처럼 보인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3월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면서 매년 1회 반기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랫동안 시장에서 저평가돼있다는 시선을 받아온 종목이었던만큼 중간배당은 주가 부양에 나서보겠다는 신호로 여겨져 투자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 계획은 약 4개월 만에 전면 취소됐다.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시황이 악화하고 불확실성이 증가해 기존에 실시하던 기말배당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18일 현재 롯데케미칼은 1조원 이상의 유상증자 추진을 검토 중이다. 추진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만약 실제 유증이 이뤄진다면 또 한 번 거짓말을 한 셈이다.
유증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와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 운영자금 등으로 쓰일 전망이다. 주로 일진 딜에 이 돈이 쓰일 텐데 롯데케미칼은 지난 달 IR을 통해 내부 자금과 일부 차입을 통해 인수대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우리 돈 많으니 걱정말라'는 식이었다. 강종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외부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권에서 LOC(본입찰) 접수를 받을 예정이고 금융 기관과의 접촉을 통해 자금 조달에 무리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증자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때아닌 증자 소식에 롯데케미칼의 주가는 6.06% 하락했다.
롯데케미칼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기초화학군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업이다. 우량한 재무구조로 크레딧 역시 최상위권(AA+)이다. 이런 회사가 '했던 말을 번복하는 현상'을 가볍게 볼 수 있을까. 비금융권이고, 영향이 시장 전반에 퍼지지는 않으니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는 것일까.
결국 레고랜드, 흥국생명 사태와 본질은 똑같다. 시장 신뢰에 금이 가는 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조금씩 금이 간 신뢰는 나중에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했던 말은 지키거나, 지키지 못 할 말은 꺼내지도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