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빚', 반대되는 개념을 하나의 단어로 묶어봤다. '검은 하얀색', '침묵의 아우성' 같은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자본 빚이라는게 실제 자본시장에 존재한다. 실제로는 빚(부채)과 같은 성격인데 회계적으로는 자본으로 인식되는 개념이다. 흔히 신종자본증권이라고 분류되는 영구전환사채(CB)다.
CB는 CB인데 만기가 반영구적이라 영구CB라고 부른다. 보통 30년 만기다. 심지어 이 30년이 지나도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이자 지급을 잠시 정지할 수도 있다. 채권자가 풋옵션을 가지지도 않는다. IFRS는 한 상품을 볼 때 회사가 상환을 회피할 수 없다면 부채, 그 반대라면 자본으로 본다. 영구CB는 그래서 자본이다.
그런데 실제 이 영구CB를 자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대한항공으로의 피인수 과정에 있는 아시아나항공을 취재하다보니 이 영구CB에 대한 회계 분류를 진정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 의구심이 많이 생긴다.
영구CB에는 대부분 일정 시점이 지나면 금리가 상승하는 '스텝 업 조항'이 있다. 보통 영구채의 스텝업 기간은 5년이다. 발행 5년이 지나면 금리가 뛴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 영구채의 스텝업 기간은 절반 이하인 '2년'이다. 2년 후 금리가 2.5% 뛰고, 2년 만기 국고채 채권 수익률에 따라 조정금리까지 붙었다. 또 5년이 지나면 1년마다 금리가 0.5%씩 붙었다.
영구채 중 2020년 발행된 건이 있다. 금리 7.2%로 발행됐던 이 영구채는 시간이 지나 스텝업 조항이 발동되면서 금리가 무려 약 12.5%까지 상승했다. 아시아나항공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고금리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영구CB를 발행해 12.5%짜리를 갚았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2022년 6월 증권사에게 발행했던 1750억원짜리 영구채에도 똑같이 재현됐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새로운 1750억원짜리 영구채를 발행해 기존 것을 갚았다. 기존 5.1%로 발행됐던 1750억원의 영구채의 금리가 8.5%까지 오르면서다.
경제적 '실질'을 반영한다는 IFRS 하에서 영구채를 자본으로 바라보는 것이 실질을 반영하는 것일까. 신용평가사에서는 영구채의 성격에 따라 자본과 부채를 분리하고 기업의 신용평가를 한다지만 공공의 정보인 재무제표 상에서는 100% 자본으로 뜬다. 몇 년 전 흥국생명의 5년짜리 영구채도 자본 분류의 논란이 생겼는데 아시아나항공은 심지어 상환 반강제(?) 타임라인이 2년짜리다.
아시아나항공의 잘못이라고 꼬집는 것이 아니다. 자본으로 분류된다는 특성을 이용해 재무구조와 유동성이 좋지 못한 회사가 영구채 발행을 통해 일종의 착시를 빚어낸다면 이는 IFRS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자본시장의 '검은 하얀색'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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