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사회는 회사의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이사 선임, 인수합병, 대규모 투자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경영권 분쟁, 합병·분할, 자금난 등 세간의 화두가 된 기업의 상황도 결국 이사회 결정에서 비롯된다. 그 결정에는 당연히 이사회 구성원들의 책임이 있다. 기업 이사회 구조와 변화, 의결 과정을 되짚어보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과 핵심 인물을 찾아보려 한다.
우리은행 캄보디아법인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을 놓고 이사회 의결을 회피한 형태로 자금을 집행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전체 후원금액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규모였던 만큼 이를 우회, 전결 가능금액으로 쪼개 후원한 일이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나중에 이를 인지하고 올 초 경질성 인사를 내리며 책임을 물었다.
이사회가 기업경영의 주요 의사결정 역할로 하는 것은 독립적인 이사진의 감독 및 견제 과정을 거쳐 경영진이 균형잡힌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관련 임직원은 이런 과정을 무력화시켰다. 해당 이슈로 우리은행의 '깜깜이' 경영의 관행이 드러났지만 추후 경영진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정 조치를 즉각 취했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우리은행 캄보디아법인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 요청이 들어온 것은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현직 회장으로 있는 아동복지전문재단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측은 캄보디아 아동들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디지털 기술을 익혀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사업을 기획하면서 후원금을 모집했다. 해당 후원금으로 캄보디아 프놈펜, 칸달, 캄퐁톰 등 3개 지역의 총 21개 학교에 디지털 교실 및 도서관 등의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었다.
캄보디아서 한창 영업 중인 우리은행에 500만달러(65억원) 규모의 후원요청이 들어왔다. 우리은행으로서 캄보디아 정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데다 해외 영업장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 등 명분도 좋았다. 황 전 회장과의 친분이 있는 당시 임원들을 주축으로 흔쾌히 후원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지원 방식이었다. 해외법인에서 500만달러 규모의 자금집행은 이사회 의결사안이다. 우리은행은 이를 회피하고자 우리은행 캄보디아법인에서 100만달러씩 다섯 차례 자금을 집행시켰다. 100만달러는 캄보디아법인이 전결 가능한 금액 규모다.
이사회는 회사 업무집행에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로서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 집행에 대해서 직접 보고받고 의결해야 한다. 회사의 중요 사업을 경영진이 아무런 견제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시키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다. 우리은행의 해당 후원 결정은 회사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이사회 기능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임 회장은 추후 해당 보고 누락 사실을 인지했고 담당 임원에게 책임을 물었다. 올해 3월 전임 글로벌 그룹장의 경질성 인사는 글로벌 실적부진 문제라기보다 해당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대한 후원에 배경이 있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미 퇴임한 임원은 책임을 빗겨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지난해부터 우리은행의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2026년까지 프로젝트 대상 학교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디지털 인프라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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